내용
귀환과 성전 재건(에즈1~6장)
기원전 539년에 페르샤 황제 고레스는 바빌론을 무혈로 점령하였다. 고대에 있어서 참으로 개화한 통치자였던 그는 약탈과 억압을 일삼던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의 정복자들과는 달리 속국의 주민들이 제국의 체제안에서 문화적 자치를 누리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폈다.그 덕분에 유대인들도 고국으로 돌아가 야훼 신앙을 복구할 허락을 받고(1, 2~4:6, 3~5) 총독으로 임명된 유다왕가 출신 세스바쌀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1~2장).
이방인 군주를 움직여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예언을 이루시는 야훼께 신뢰하며 새로운 시대에 제나름의 구실을 하려는 열망을 지니고 돌아온 제1진의 귀한민들은 즉시 제단을 쌓고 절기마다 제사를 드렸다. 537년에는 성전재건 기초공사에 착수하였다(3장). 그러나 성전복원이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과거 북이스라엘의 10지파가 살던 자리에 거주하는 사마리아인들과 유배시 유대 땅에 남아 살아온 이들이 마음으로부터 환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귀환민들이 자기들만이 참된 이스라엘이라고 자처하며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을 고수하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하자 그들 사이의 긴장은 고조되었고, 마침내 페르샤 관청의 개입을 불러들여 성전 공사는 기초에서 머물게 되었다(4장).
그러는 동안 세스바쌀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그의 조카인 즈루빠벨이 총독이 되고 페르샤에도 다리우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에집트가 페르샤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아테네군들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샤를 격파하는 사건들도 벌어졌다. 이러한 국제적인 전환점이 제공되고 예언자 하깨와 즈카르야에게 내린 야훼의 말씀에 힘입어 즈루빠벨은 다리우스의 새 칙령 아래 520년경 성전 공사를 재개하여 드디어 첫 귀환후 20년이 지난 515년 3월에 성전을 완성하고 감격스런 봉헌식과 축제를 벌였다.(5~6장).
느헤미야의 개혁(느헤 1~7:11~13장)
성전이 재건된해부터 느헤미야가 등장(455년)하기까지의 약60년동안의 유대 공동체와 디아스포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에즈라ㆍ느헤미야서도 이 기간 동안을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으며, 나일강 제1폴포 부근에 위치한 엘레판틴에서 나온 아랍어 문서를 통해 유대공동체가 5세기에 그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회고록의 형식으로 시작되는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오게 된 동기가 귀환한 동포들이 고국에서 비참한 생활에 허덕이고 있다는 소식이라고 말한다(1, 1~2, 10). 유대 평민으로 페르샤 왕궁에서 일하던 그가 왕에게 자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때의 팔레스티나의 사정에 대해 우리는 오바디야, 말라기, 요엘예언서들 안에서 얼마간 엿 볼 수가 있다: 당시 땅은 황폐했고 기근으로 생게의 위협을 받아 가난한 동족은 노예로 팔려야하고 사제들은 직무를 소홀히 했으며 혼종혼(混宗婚)으로 선민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총독이되어 예루살렘에 온 느헤미야는 먼저 현장을 둘러보고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을 조직적으로 분담하여 착수하였다.사마리아의 관할지역에 속한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일은 방해를 면치못했으나 한편으로는 성을 쌓는 일을 계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을 들어 마침내 성벽은 완공을 보았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의 재건이라는 대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빈곤에 시달리는 동족이 고리대금을 갚을 길이없어 자식들을 종으로 파는 실정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시정하였다(2, 11~7, 4). 민족의 안녕을 위하여 성벽을 쌓고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일깨운 그는 유대공동체의 일원이란 족보에 따라 등록된 이들임을 또한 주지시키고(7, 5~69:에즈2장) 지방성읍에 살던 이들을 다수 성안으로 이주시켜 살게하며(11장), 성전에서 제사를 정규적으로 드릴 수 있도록 소액의 특별세도 물렸다(12, 47). 이렇게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대강 끝내고 느헤미야는 433년에 일단 페르샤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있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각종 부패와 과오를 단호하게 시정하였다. 그는 성전을 소홀히 다루는 이들과 수입을 올리고자 안식일을 안지키는 이들을 질책하였고, 10일조를 내지않아(말라3, 7~10) 레위인들이 받을 몫이 없어서 그들이 직업을 포기하는 일이나 직무에 싫증난 제관들이 야훼께 병들고 상처있는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말라1, 6~14)을 바로 잡고 신명기법전에 의거하여 혼종혼을 엄금하였다(13장).
하느님의 뜻을 과감하게 실천하여 용기있는 신앙인의 모범을 남긴 느헤미야에 대해. 2세기 반이 지난후 집회서의 저자는『느헤미야에 대한 기억 또한 위대하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너져 버린 우리 성벽을 다시 쌓았고 거기에 문과 빗장을 달아 우리가 살집을 다시 세웠다』(집회49, 13)라고 감동어린 필체로 추모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역경을 극복한 느헤미야의 가르침 중에서『야훼께서 지켜주시니 너희는 기뻐하라』(8, 10)는 한마디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약해질 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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