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들과 어쩔 수 없이(?) 악수라도 하게 된 날에는 밤새도록 비눗물로 손을 씻었던 시절이 있었다.
웃어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그때」. 그때는 이미 지난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꺼림직한」감정이 남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3리 「포천 농축단지」에 사는 주민 55세대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계속 「꺼림직한」감정의 희생자로 남아있다.
소위 음성나환자 정착촌이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가난과 싸워내기에도 벅찬 그들이 「밖」에서 쳐놓은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걷어내기 위해 없는 힘마저 뺴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수유리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포천군에 내려다시 완행버스로 10분. 다시 완만한 산길을 타고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음미하며 20여분을 걸으면 포천농축단지에 다다른다.
서울에서 2시간거리, 가장 가까운 정착촌인 이곳은 마을입구에서부터 물씬 풍겨나오는 닭똥냄새와 닭 울음소리로 전형적 정착촌임을 가능케한다.
살림집과 축사가 도로 주변에 나란히 정렬해 있고 마을안쪽에 신평공소(포전본당관할)가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농축단지는 겉으로 보기에 그지없이 평화로운 농촌이다.
더구나 주민 55세대 중 40세대가 천주교신자이고 아픔을 가진 사람들 나름대로 공동체를 잘 이끌어 가고 있기에 언뜻 나환자들의 천국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 곳이다.
그들이 현재의 위치에 정착한 것은 73년. 소록도 나병 환자들 40세대가 이뤄놓은 것 원 퇴원자와 일부 음성 나환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오기까지 인근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네 곳을 옮겨다녀야했으며 현재의 자리를 사수하는데도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 했다.
71년부터 사람들을 규합, 지금의 정착장을 세웠던 최억조(마르띠노ㆍ55ㆍ공소전례회장)씨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관할면장 이하 새마을 지도자들이 사표를 제출하는 등 반발은 대단했다』면서 『보사부의 협조와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이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안고있는 고민은 자립문제. 정착촌에 오기 전 대부분 구걸로 연명했던 그들인지라 생활밑천이 있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자본이 들지 않고 수익성 있는 양계 사업이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총8만수의 닭이 있는데 개인별로 최고3천수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마리의 닭도 없어 마을 내 품을 파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8만수의 내막에는 가구당 약 5백만원의 빚이 도사리고 있다.
시설비ㆍ종자 구입비 등 모든 비용을 빚을 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주 때 주택은행에서 대출받은 융자금까지 합치면 가구당 빚은 더 늘어난다.
무슨 대책이 있을리 없다.
시세 좋을때 특란 40원ㆍ대란 35원정도지만 사료비만 2만원이 넘어 하루18시간 꼬박 일해도 결국 손에 떨어지는 것은 5천원꼴.
그래도 위안이 된다면 정부에서 지급하는 하루 쌀보리 3백 99g정도. 약값, 자녀 교육비 등으로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수익은 하나도 없지만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계산이다.
그러나「소외」에다「가난」을 덤으로 받고 있는 이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매일 아침저녁, 눈을 뜨고 감기 전 항상 찾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들의 희망이다.
그것은 그들의 건강한 자녀들, 가끔씩 찾아주는 은인들, 그들의 입을 대신해주는 가톨릭나사업가연합회 그리고 나병 경력도 없이 13년간 꾸준히 그들과 함께 살아준 박성순(아우구스띠노ㆍ64ㆍ공소회장)씨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박회장은『이들과 함께 살아도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들어왔다』고 밝히면서『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물질도 중요하지만 바로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전진문(아우구스띠노ㆍ46)씨는 자활을 위한 이웃들의 도움도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90년에 가서 구라주일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허나 이제 병력자들도 대부분 늙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활기반이 설때까지 만이라도 연장했으면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더 묶어보려고 애쓰는 이들, 이들 속에 누군가 들어가 마음의 문을 열고『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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