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눈을 감고 자신을 들여다보면 <자기>란 형체조차 사라지고 없다. 자기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있게 해주었을 때는 있는 것이고, 없도록 거두어 들이실 때는 없는 것이다.
도대체 <자기>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를 제외한 <타인>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되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며, 또 왜 그래야만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보면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인간의 생각이란 기껏 감각적인 혹은 지적(知的)인 범위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들은 영원히 보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이란 것이다.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이란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 무엇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어떤 순간도 변화하지 않는 때는 없다. 지금이 순간도 다음 순간도 우리는 변하고 있다.
어제의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이 변화의 법칙 속에서는 녹아지고 없어진다. 물이 변화하여 얼음이 되듯이, 기체가 되듯이 우리는 어느 날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이다. 죽음 또한 하나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죽음 역시 삶의 연속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끝없는 삶의 연속, 거기엔 <자기>라는 존재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일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포도가지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붙어있고 내가 그를 떠나지않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요한15, 4)
영적인 세계에서 죽음이란 있을 수 없다. 또 거기에선 모든 사람들은 같은 생명 같은 형제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포도가지에서 스스로 떨어져나가 죽음의 골짜기에서 헤매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없이 괴롭고 불만스러운 나머지 그 고통과 자기 연민과 불만을 타인에게 떠넘기려는 <에고>에서 나온 소치일 것이다. 「하느님은 기쁨, 영원히 새로운 기쁨이다. 우리는 기쁨을 통해 그를 발견한다. 우리는 기쁨으로 태어났으며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영원한 기쁨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하느님, 행복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들이며, 딸이며 바로 하나인 것이다」
오늘날의 성자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노래이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포도나무에서 생을 누린다면 정녕 평화와 기쁨이 우리를 덮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너무나 이 세상것 들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져가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그것이 나날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도 같다. 전시도 행사도 별나게도 많다. 무슨 무슨 모임, 망년회 신년회 출판 기념회 등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깥을 나돌아 다녀야 될 형편이어서 좀처럼 마음을 모아 고요히 명상에 잠길 시간조차 내기 힘든다.
고요히 명상을 통한 하느님과의 접촉이 없다면 인간은 절대로 세속적인 욕망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아하고 신비스런 은빛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하는 「죠나단」(위대한 갈매기의 이미지)처럼 우리들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 그 외 모든 성자들, 그들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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