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오전 10시 30분에 정베드로가 좋은 소식을 갖고 도착했다. 간밤에 그토록 찾아 헤맨 55명의 교우들이 특별기차를 타고-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합쳐서 모두 2천여명의 크리스찬들과 함께 무사히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특별열차는 어제 밤 사이의 어느 시간에 함흥에서 흥남으로 달려온 차였다.
베드로는 지난밤에 기차를 탈 때에도 그랬지만 크리스찬들을 우선적으로 승선시킬 방도를 물색하고 있었다. 나는 군목 뵐켈과 현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문제를 의논한 뒤, 민사부의 무어 중령께 달려갔으나 그 결과는 미지수였다.
오전 11시 30분 미사 직전에 이 디모텔오가 달려왔다. 미사 후 나는 그의 부탁을 받고 그의 상사인 담당 하사관에게 가서 부대 이동시에 그를 함께 데려간다는 확답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하사관은 약속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반대로 한국인 민간고용인들은 배가 비좁을 만큼 남겨두고 떠나야 할 형편이라는게 아닌가. 그 즉시 나는 디모테오를 미군 고용직에서 해직시킨 뒤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그는 베드로와 함께 즉시 출발하여 소호진 해변에서 배를 기다리는 군중들과 합류했던 것이다.
오후 1시 30분 라이첸백처 중위가 내게 전화를 걸어서 공항에서 탑승을 도와주던 한국인 소년 한명을 태울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왜냐하면 한국 민간은 해당 미국부대와 동행 할 수 없다는 명령이 하달됐기 때문에 그 중위는 그 소년을 직접 공항까지 데려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요 며칠 동안 그런 방법으로 한국인들을 실어 날랐음을 알고 있는 터라 그는 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온 것이다.
꽤 지체되고 있었다. 하릴없이 출발명령만 기다리고들 있었다. 라이첸백처 중위는 나와 나의 계획을 위해 실로 많은 일을 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몇 분간의 요청을 묵살하기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포공항까지 15마일 거리를 헌병 지이프로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군 포병대는 지금 사실상 모두 부두까지 철수한 상태였으며 산 뒤편으로 마치 시계처럼 둥글게 포진한 공산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딸서 양쪽에서 서로 대포만 쏘아대고 있었다. 오른쪽 들판에 떨어진 거대한 포탄은 우리가 10군단사령부 지역을 벗어나 달려온 길 위를 덮쳤다. 그 순간 지이프가 한순간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사방은 온통 불천지였고….
거대한 검은 연기가 공항의 여러 지역에서 소용돌이치며 치솟았다. 가스와 기름, 옮기지 못한 모든 장비들이 모조리 불타고 있었다. 비행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 늦은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나「날으는 유개화차」한대가 이륙준비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는 곧장 탑승허가증과 신분증을 갖고 탑승준비를 시켰다. 그리고는 시커먼 연기를 뚫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이것이 연포공항까지 간 우리들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임에는 분명했다. 다른 왕복표를 끊을 수 없는 이상 여기서는 마지막이었다.
오후4시경에 기지로 돌아와 보니 군종부는 오후6시에 이동하라는 기시가 내려져 있었다. 우리는 몇 가지 짐을 마지막으로 꾸리고 6시 10분에 2.5톤 트럭에 올라탔다. 이런 차를 군대용어로「육발이」라고 하는데 바퀴 여섯개 모두가 튼튼하고 힘 좋게 달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두에 닿고 보니 세계1차 대전의 SㆍS헌터 빅토리호가 무어 맥 코맥의 지휘아래 새로운 작전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미군10군단의 인원과 장비를 이미 적재하고 있었다.
군종사제 윔 소령은 그때까지 흥남에서 최전방에 배치되었다가 우리와-군목 던컨 헤일러, 헤톨드 뵐켈, 패트릭 클리어리 신부-합류했다. 부두에서 우리는 세찬바다바람을 맞으면서 장비를 적재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빈 드럼통속에 나무 조각들을 집어넣고 불을 피워 손을 녹이니 훌륭한 난로가 된 것이다. 10군단 군종참모인 토비신부는 이당시 동경에 있었다. 건널 다리 꼭대기에 서있는 승선담당 장교가 호명한 사람만이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건널 다리에서 환영횃불을 밝혀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부두 반대편에 서있었다. 밤 기온은 더욱 차가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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