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일본군의 만행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소리는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갔고 이에 따라 일본의 언론도 한국가톨릭에 대해 점점 비판적이 되었다. 동경의 영자신문「재판 데일리 메일」(Ja-pan Daily Mail)은 1903년 두 번에 걸쳐(4ㆍ27, 5ㆍ1) 제주도의 프랑스 선교사들의 배일 운동을 비난하는 보도를 했다.
일찍이 상해(上海)에서 김옥균(金玉均)을 암살한 홍종우(洪鍾宇)가 새로 제주목사에 임명되었는데 그는 부임하자 당지의 프랑스 선교사들의 저언을 따라 또 그들과 제휴하여 그곳의 일본인들에게 집을 세주거나 또 그들 밑에서 일을 하거나 그들과 일용품을 거래하는 등 일체의 상종을 엄금하는 동시에 그것을 어기면 징영에 처하게 했고, 또 일본학교에 다니는 자에게는 사형까지 처하게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결국 일본인을 모두 제주도에서 축출하려는데 있다.
홍종우는 수구파(守舊派)에 속하는 정객이 있고, 또 프랑스에 유학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보도는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부임에 앞서 서울의 프랑스 공사를 만나 친교회적인 태도를 보였고 또 뮈텔 주교를 찾아가서 제주도의 프랑스 선교사들에 대한 추천서를 얻어내기도 했다. 또「개항지(開港地)가 아닌 제주도에 일본인이 체류 할 수 없다면 왜 프랑스선교사에게는 체류를 허용하는가」라는 의의가 있을 것에 대비해 홍종우는 이미 서울의 중앙정부로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에 대한 특별지시를 받아냈을 것이라고 일본측은 추측했다. 홍종우는 부임 후에도 예컨대「제주교난」의 교회측 공범자의 무죄를 주장하는 등 그의 친교회적인 태도를 분명히 했다.
1904년이 되면서 일제는 한국의 영토를 수탈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의 하나로 소위 황무지의 개척권을 향후 50년간 일제에 양도하도록 조선정부에 강요했다. 황무지란 당시 전국의 주인 없는 땅인 산ㆍ임야ㆍ하천부지ㆍ미경작지 등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그것은 당시 국토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황무지 개척권의 양도란 곧 그만한 영토를 일제에 넘겨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므로 곧 이에 반대하는 한국인들의 시위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유생들은 정부에 반대 상소를 올렸고, 보안회(輔安會)회원들은 배일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종로에서 연일공개성토대회를 가졌다. 그러자 일본군은 보안회의소에 난입하여 강제로 군중을 해산시키고 또 간부를 납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안회원들은 또 정동에서 수만명이 모여 시위를 계속했고, 일제는 무장한 순경으로 하여금 보안회 간부들을 체포하게 했다. 또 보안회원들은 일제의 그와 같은 폭력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각국 공관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체포된 보안회원 중 한명이 고문으로 인해 죽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개신교인이라는 말도 있고 가톨릭인 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는 그 죽은 사람을 가톨릭인으로 단정했는데 7월 28일 자영문란(Korean Dai-ly News)에 이런 기사를 실었다. 『서울의 가톨릭은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항의하기 위해 미사 집회를 갖기로 결정하는 한편 그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서대문밖에 모이도록 전국에 안내장을 보냈다. 그런데 가톨릭신앙을 지지하는 사람은 서울에서만도 5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뮈텔 주교는 그것을 허위보도라고 하며 해당 신문사에 항의하는 동시에 정정기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된 정정기사는 나오지 않고 말았다.
1907년이 되면서 일제는 고종을 폐위시키고 또 군대를 해산시키기에 이르렀고, 이에 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하는 등 정말 시국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이런 때를 맞아 동경의 영자 신자인「재팬타임스」(The Japan Times)는 한국의 프랑스 선교사를 국제평화의 교란자로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11ㆍ23)은 한국 가톨릭 주교의 말을 이용하여 일본인과 한국인은 뿌리가 같지 않으므로 서로 화합이 될 수 없다. 이또(伊藤)통감도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그들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는 오래 갈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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