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신 주님
요한의 그리스도론이 하강형(상부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지만 사람이 되신 아들의 인간성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강생 즉 사람 되심을 표현하기위하여 사용된「살」용어는 아들의 참 인간성, 나아가 죄스럽고 연약한 인간조건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살」은 곧 죽음에 처하여있는 인간이다. 육체적인 것 또는 물질적인 것, 지상적인 것을 경멸하는 영지주의적 이원론을 논박하기위해서도 사용된 그 용어는 죄악과 죽음의 운명에 처해있는 인간의 연약한 조건을 취하여 사람이 되신 아들을 나타내 보인다.
아들의 인간성은 예수의 인간적 면모들안에서 입증된다. 그분은 피곤(4, 6)갈증(4, 7:19, 28)마음의 동요(12, 27)배신감(13, 21)따위를 겪으시고 애정의 면모도 나타내신다(11, 5ㆍ36:20, 2). 인간에 대한 다감한 애정 속에서 주님으로 계시되신다. 비통한 심정으로 죽은 나자로의 무덤 앞에 계실 때에 주님으로 고백 받으신다. 믿지 않으려는 토마에게 애정을 보이며 그의 개성에 따라 그를 친숙히 대해주시어 신앙고백에로 유도하신다. 영광스럽게 되셨지만 여전히 인간성을 지니 채 주님이 되셨다.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복음서이지만「살이 되신 말씀」의 증언서이다. 그 표현 안에는 전적으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예수의역사가 긍정되고 있다. 『우리가운데 거처를 정하신』(1, 14)하느님의 아들을 삶, 행정, 죽음을 통하여 참인간이심을 보여주신다. 「나는…이다」:요한복음서 안에서 예수의 특유한 어투로 나타난다. 마태오5번, 마르코3번, 루가4번인데 반하여 요한에서는 29번이나 나오며 예수가 발설하신 것으로는 마태오1번, 마르코2번, 루가2번, 요한 26번이다.
그 가운데서 8, 24ㆍ28ㆍ58절은 특히 유의할만한 대목이다「야훼」이름(출애3, 14-16)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표현으로서 역사의 주님,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능동적이고 신실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낸다. 이사야서(43, 10ㆍ11)에서는『나, 내가 곧 야훼이다1』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에제키엘서(16, 62:20, 42:23, 49)가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에 비유하는 대목에서 유사한 표현이 보인다. 두예언자는 역사 안에서 항구히 활동하고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현조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을「나는…이다」(야훼)라는 표현 안에 집약한다. 그것은 구원에 충실하시고 항구한 사랑으로써 이스라엘을 보살피시는 역사의 하느님에게 대한 신앙의 표현이다. 본래 야훼 이름은 초월적이고 신비에 싸인 하느님이 백성과 아주 가까이 함께 계시기 위하여 악의 세력에서 그들을 해방하시고 역사 안에「내려오시는」하느님을 계시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을 서술형으로 풀어 쓴 것이「나는…이다」이다. 예수가 이 표현을 사용하심으로써 야훼 이름과 권능을 소유하는 분으로 선언하신다. 하느님으로서 당신자신을 암시하시는 표현이다. 자기주장의 표현이다. 공관복음서의『그러나…나는 말한다』와 일맥상통하는 어투이다. 『너희는 「내가…이다」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행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8, 28).』예수 자신이 하느님의 이름이심을 주장하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느님에게 예속되어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분으로서 그 이름을 주장하신다.
요한은 살이 되신 하느님 말씀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오고가시는 예수, 내려오고 올라가시는 예수, 아버지에게서 나오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시는 예수, 세상에 왔다가 세상을 떠나가시는 예수로 묘사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묘사는 예수의 기원과 역사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하느님과 동등하시며 창조의 원리이고 목적(1, 1-3)으로서 하느님과 우주의 중재자이신 말씀은「살」이 되시어 인성을 취하셨다. 말씀과 살, 용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및 두본성의 결합을 암시한다. 말씀이고 살이 되신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구비하시고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을 위하여 고난을 통해 영광의 길로 나아가신다. 복음서의 머리말은 예수가 구원역사 안에서 수행하신 독특하고 유일한 역할에 대한 반성인데 그 역사는 예수의 신적 본성, 선재, 창조기능을 밝혔다. 머리말은 선재에 대한 고찰에서강생에 대한 반성으로 전개되었지만 실제로 복음서의 내용은 그 반대 즉 예수의 역사로부터 선재에로 전개되었다. 그런 점에서 서론은 복음서의 결론이기도 하다. 신앙 안에서 이해된 예수의 역사를 표현한다. 이 역사는『아버지의 품 안에 계시는 외아들』의 역사로서 그 아들은 살이 되심으로써 아버지의 계시자,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하느님 말씀이 되셨다.
어린 양
묵시록과 박해와 환난의 시기에 그리스도 신앙에 비추어 역사를 이해하려는 문학유형이다. 믿는 이들에게 고난으로 보이는 역사의 사건들을 이해하려면 계시가 필요하다. 이 계시를 통하여 그 사건들이 하느님의 구원개입 및 심판의 표징들로 이해된다. 역사의 신비를 그 깊은 데까지 이해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빠스카 및 보편적 주권의 신비로 나타난다. 부활하신 분은 역사의 주인, 심판주이시다. 그분은 역사 안에서 희생되신 어린 양(5, 6이하)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분』(1, 5:5, 10:20, 6:22, 5)이다. 하느님의 나라, 그분의 계획은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며 역사는 선과 악, 하느님과 사탄의 대결장이 된다. 따라서 역사 안에 들어온 하느님 나라는 투쟁과 고통을 통하여 건설된다. 위기, 고난을 겪는 신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쓰여 진 이 묵시록은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묘사함으로써 고통 중에 승리로 묘사함으로써 고통 중에 승리하여 역사의 주인과 심판주가 되심을 보여준다.
십자가 위에서 악을 패배시키기 위해 고난을 겪은 신 그리스도는 부활하시어『공정하게 심판하시고 싸우시는』(19, 11), 온 민족의 왕이며 심판 주이시다:『그분의 입에서는 모든 나라를 쳐부술 예리한 칼이 나오며…전능하신 하느님의 분노의 포도를 담은 술을 짜내실 것이다』(19, 15). 그리스도는 보편적 왕권을 쥐고 계신다:『그분은 많은 왕관을 썼다』(19, 12). 그분은 하느님의 고유한 칭호를 지니신다:『알파요 오메가』(1, 7:21, 6:22, 12)『처음이자 마지막』(1, 17:2, 8:22, 13) 『세세 영원토록 살아계신 분』(1, 18:4, 9:10, 6).하늘나라에서는 하느님과 어린양이 구별되지 않는데 두 분은 같은 옥좌에 앉아(3, 21)같은 흠숭을 받으시고(5, 12~14)같은 광휘를 발하신다(2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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