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澳門)는 극동아시아 복음화의 핵심이었다. 가톨릭교회의 동양 선교 전초기지로 한때 아시아 각국 교회를 연결하는 중심지였던「마카오」는 한국교회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김대건ㆍ최양업ㆍ최방제 등 세명의 한국 소년이 신부가 되기 위해「마카오」에서 6년간이나 수학했고 병약했던 최방제 소년이 병사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마카오」가 김대건 신부 등의 발자취를 찾기 위한 동남아순례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홍콩의 중국 반환과 때를 같이해 다시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마카오」, 한국교회 창설과 성장에 밑거름을 주었던 마카오에서 아시아 복음화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그 모습, 흔적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신(神)의 이름을 딴 도시「마카오」는 중국 광동성 중산현 남부, 주강(珠江) 삼각주에 자리잡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아시아 지역 요새로 설립된 마카오란 명칭은 그 지역「도교(道敎) 여신」의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인구 42만명, 그중 95%가 중국계 주민이고 나머지 5%는 포르투칼, 유럽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 상에서 동과 서가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이었던「마카오」는 지난 몇세기 동안 포르투칼의 식민지 항구로 존재해왔다. 현재까지 포르투칼 행정부 하에 있는 이 중국도시는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조화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홍콩에서 뱃길로 3시간, 제트카로 불리는 제트포일(Jetfoil)을 이용하면 불과 1시간 거리다. 「타이파」「콜론」등 2개 섬을 포함, 15.5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이「마카오」의 전부다.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10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평균 섭씨 15도를 유지하지만 5월부터 9월까지는 섭씨 20도에서 30도를 오르내리는 높은 기온과 습기로「마카오」를 찾는 관광객을 괴롭히기도 한다.
중국과 유럽문화가 서로 융해되어 공존하듯이 가톨릭시즘과 남방불교, 도교가 서로 잘 혼합되어 있는 곳도「마카오」다. 이같은 형태는 마카오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1557년 포르투칼이 거주권을 획득한 이래 동양무역의 근거지가 된「마카오」는 그 보호권 아래 가톨릭교회의 극동아시아 선교의 교두보로 발전했다.
당시 극성을 부리던 서양오랑캐와 해적들의 침략을 막아주는 역할을 인정 받아 중국으로부터 보호권을 얻어낸 포르투칼은「마카오」를 기점으로 동ㆍ서 진영의 무역을 독점, 1백여년 가까이 부를 향유하기도 했다. 극동아시아에 식민지와 무역항을 설치한 첫 번째 서방국가인 포르투칼의 국교는 가톨릭. 「마카오」와 가톨릭교회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565년 예수회가 진출, 이곳에 본부를 두고「성바오로성당」「성요셉신학교」를 설립, 성직자를 양성하기 시작했고 이곳은 예수회의 중국 및 일본선교를 가능케 해주었다. 1576년 교황 그레고리오 8세에 의해「말라카」주교구로부터 분립된 마카오교구는 1588년 일본교구와 1690년 중국의「북경」「남경교구」가 분립될 때까지 일본ㆍ싱가포르 등 광대한 지역을 관할하게 된 것.
「마카오」에 우리 순례자들의 발길이 머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것은「마카오」가 한국천주교회 창설에 깊이 관여한 곳이기 때문이다. 1732년 이래 빠리외방전교회 경리부가 자리하면서 중국을 비롯, 조선선교를 위한 물자조달과 성직자들의 교황청과의 서신 연락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조선천주교회 신자들은 1811년과 1825년, 두 차례에 걸쳐 교황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냈고 편지는 이「마카오」에서 라띤어로 번역돼 교황청에 보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1831년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빠리외방전교회 브뤼기에르 소주교를 비롯 거의 모든 성직자들이 이곳을 경유, 조선 입국을 시도하기도 했다.
소주교와 함께 조선 입국을 원했던 모방 나신부가 이곳을 거쳐 1835년 서양인 성직자로서는 처음 조선 입국에 성공하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1836년 한국의 소년들이 유학의 길을 트게 된다. 김대건ㆍ최양업ㆍ최방제가 바로 그들.
한국인 사제양성의 선두자로 선발된 이들은 8개월만에 마카오에 도착, 빠리외전 경리부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의 지도로 6년간 수학했고 우여곡절끝에 김대건ㆍ최양업 두 신부가 탄생하게 된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에 1백2명의 순교복자들과 함께 성인품에 오른 김대건 신부의 피와 땀이 서려있을「마카오」.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는 없지만 꼭 한 곳 김신부와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마카오시 서쪽 해안쪽에 자리한「까뮤엔스」공원 조용한 곳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서 있다. 성인 반열에 오른 김 신부를 기념, 1985년에 세워진 이 동상은「마카오」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유일한 곳. 비좁은 거리, 낡은 건물들이 침침하게 늘어선 마카오 공원 깊숙한 곳에 외롭게 서있는 김 신부 동상은 오늘 마카오교회의 모습 일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카오」에서 과거 교회의 영화를 회상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순례자ㆍ관광객 모두가 거쳐가는「성바오로성당」은 쇠퇴한 가톨릭교회의 대표처럼 버티고 있다.
대형의 돌계단 위에 자리한 바오로성당의 현재 모습은「마카오」의 관광명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1602년 예수회가 지었으나 1835년 화재와 대폭풍우로 정면의 석재 외벽만을 남기고 말았다.
「페냐의 성모성당」역시 과거의 영광을 가슴 속 깊이 묻은 채 사람들을 맞고 있다.
항구와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페냐성당」은 1년에 단 한번, 파티마 성모발현 기념일인 5월 13일에 문을 연다. 말하자면 폐쇄된 성당이다. 최근 급격히 늘어난 한국인 순례자들을 위해 성당측은 특별 배려로 성당을 개방하기도 하는데 내부에는「가장 아름답다는 성모상」이 조용한 모습으로 순례자를 반겨준다.
「타이파」다리를 건너「콜론」지역으로 들어가면 흰색과 크림색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성당」이 나타난다. 1928년에 세워진 이 작은 성당은 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의「팔뼈」등 값진 유물을 보관, 순례자들을 감동시킨다. 「성 요셉신학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비록 신학생이 없어 폐쇄되기는 했지만 한때 이곳은 사제 양성의 요람으로 군림하지 않았던가?
현재 25만 여 명의 신자를 관장하고 있는 마카오교회는 20여 개의 본당과 학교 자선단체 매스컴센터 등에서 약 1백여명의 교구 및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활동하고 있다. 얼마전 한국의「사랑의 선교회」소속 수사 2명이 마카오에 진출한 것은 작은 놀람이 아닐 수 없다. 행려자사목 등 시설봉사를 위해 준비 중에 있는 이들의 활동은 과거 우리교회가 받았던 형제적 사랑을 다른 모양으로 나누기 위한 노력의 소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역과 상권의 발달은「마카오」를 카지노와 도박장의 명소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공인된 대형 카지노만도 4개나 되고 길가엔 전당포가 줄지어늘어선 마카오에서 극동선교의 중심지로서 옛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마카오」의 종교ㆍ종교성을 여타지역의 형태와 비교하기는 역시 어렵다. 동ㆍ서양의 종교가 나란히 번성했고 전설 속에서는 결합되기도 한 마카오에서 가톨릭교회를 예전처럼 복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수도 있다.
마카오의 미래는 그들의 과거만큼이나 불투명하다. 「홍콩」이 기침을 하면 즉시 감기가 걸린다는「마카오」는 홍콩의 운명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마카오 사람들은 밝은 측면을 바라보고 있다. 「본토」(Main land)가 기지개를 켜고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사실 이에 대한「마카오」의 기대는 대단하다. 좁은 땅을 넓혀 비행장을 만들고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80년대 중반부터 밀어닥치고 있는 관광객, 그들은 이 작은 항구를 중국 본토로 들어가는 손쉬운 관문으로 이용하고 있다. 「마카오」는 그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기꺼이 그 역할을 말고자 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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