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마지막 회는 지금까지 연재해온「공산권교회의 현황」을 종합, 이를 바탕으로 가톨릭교회가 공산주의 속에서 버티어온 배경과 원인을 심층 분석한다. 아울러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가톨릭의 보편성에 비추어 구원의 대상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도 재조명하는 한편, 북한선교문제도 간략히 짚고 넘어감으로써 본 기회를 마무리 짓는다.
몇 차례에 걸쳐 본란에 소개된「공산권교회의 현황」을 통해 우리는 소련과 중공 및 폴란드 등 대부분의 주요 공산권 국가들에서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이 끈질기게, 또는 튼튼하게 살아있음을 보았다.
정권과의 치열한 투쟁 끝에 대등한 입장에서 그와 공존하고 있는 폴란드천주교회, 다소 굴절된 부분을 지닌 채 개방화시대를 맞으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공가톨릭교회, 또 체제에 순종하는 듯 보이는 소련 정교회와 지그도 종교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소련 내 가톨릭교회, 그리고 타협적 저자세로 다소 굴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체코가톨릭교회 등.
공산정권이 신앙의 말살을 목표로 수십 년에 걸쳐 집요한 박해 정책을 펴왔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교회는 많은 손실을 당했고 활동기회를 제한 당했으며 신자수가 줄어들었으나 신앙만큼은 결코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해의 불로 말미암아 신앙은 단련되고 정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이들 나라의 교회는 각국의 개혁 및 개방화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서서히 봄기운을 맞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를 시기하는 꽃샘추위가 여전히 매섭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공산권국가에 관한 정보가 상당히 통제되어온 우리나라에서 이들 나라의 종교현황과 그 실태는 공산권국가는 곧 종교소멸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변화시키는데 다소 보탬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전 국민의 5%선을 약간 상회하는「소수」의 신자를 가졌음에도, 매년 높은 신자증가율과 높은 성소율을 앞세우며 승승장구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다소 자만에 빠진 느낌마저 주는 한국천주교회와 신자들에게는, 무려 8천여개가 넘는 본당과 5만여명에 이르는 성직 수도자 및 대다수 국민을 신자로 하고 공산주의와 용감히 맞서 싸우는 저 거대한 폴란드천주교회는 차라리「신선한 충격」이라 표현해야 옳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물음을 몇 가지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극과 극의 상반된 세계관으로 인해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세계도처에서 서로 대립투쟁해온 가톨릭과 공산주의는 어찌해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가. 이는 투쟁과 타협의 산물 외에 가톨릭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등의「주의」라는 이데올로기차원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공산국가내에서 양자의 공존이 가능하다면 전세계적으로도 대화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구세사(救世史)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는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공산주의자체는 별개로 치더라도 그들은 역시 인간이기에 우리와 함께 바로 구원의 대상이 아닌가.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같은 질문은 많은 서방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던지는 것임과 동시에 바로 우리의 형제요, 핏줄인 북녘동포들을 지척에 두고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대한 물음이기도하다.
먼저 공산국가내에서 가톨릭과 공산주의가 공존하는 주요한 까닭과 배경을 다시 한 번 종합 재정리 해보자.
첫째 교회와 신자들이 신앙수호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결코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공산권을 통틀어 지금까지 1천만명이상으로 추정되는 순교자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와 신앙이 보존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라고 한 유명한 교부들의 증언처럼 이 거룩한 종교적 희생은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교회가 회생하게 된 영약이 되었다.
한편 교회를 수호하는 과정에서 당국의 교회 이간술책에 넘어가 소위 어용교회가 생긴 것은 뼈아픈 일이었다. 특히 중공의 경우는 로마가톨릭과「중국애국천주교회」두 파로 나뉘어지는 분단의 아픔을 맛보아야했다. 이 어용교회가 바티칸을 이탈한 것으로 서방에서는 보고 있으나 그 판단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 양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진정 교회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당시 상황 하에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는 중공애국교회소속의 한 주교의 말을 깊게 새겨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둘째 공산주의자들의 이른바「통일저선 전술」의 구사도 교회가 존재하는 중요한 원인중 하나로 꼽힌다.
통일전선전술이란 그들의 힘이 모자라거나 상황이 여의치 못할 땐 적대세력과 힘을 합쳐 목표를 달성한다는 공산주의특유의 술책을 말한다.
나찌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이 한때 궁지에 몰렸을 때 공산정권은 소련정교회에 도움을 청했고,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교회의 협조로 스탈린은 전쟁에서 힘겹게 이길 수 있었다.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자유화물결에 밀려 폴란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정권이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정권은 폴란드천주교회에 화해와 수습을 부탁했다.
순교 힘으로 신앙수호
공산주의자들은 수십년에 걸쳐 그리스도인들과 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이 같은 협력을 통해 그들의 지상목표인「사회주의 건설」에 그리스도인을 동참시킬 수 있음을 부분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종교는 아편이므로 말살 시켜야한다」는 그들의 종교에 대한 기본전략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통일전선전술도 어디까지나 그들의 전략 중 하나일 뿐 그들의 힘의 우위가 명백해질 때 중국공산당이 일제 패망 후 국민당정부를 무너뜨리던 식의 전면공세를 언제 다시 감행할지 모를 일이다.
폴란드교회에서 두드러지듯이 공산정권과의「파워게임」을 통해서 교회의 몫을 찾아가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서방세계와 철의 장막속의 교회는 공산주의의 이러한 기본속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공산체제내부의 변화가 종교의 자유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자유의 허용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공산주의 사회자체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개방화정책에 따른 불가피한 조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사회내부의 변화는 외부에로의 개방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공산주의자들은「모든 인민을 평등하게 잘살도록 한다」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고「사회주의 이상 국가」건설에 매진해왔으나 경직된 정치체제와 통제경제로 말미암아 그들의 당초 계획은 점차 빗나가고 말았다.
자유시장 경제원칙에 입각한 자본주의사회에 비해 그들은 일견 빈부의 차가 적어지고 평등해진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향수준의 평등에 불과했다. 경공업 경시정책으로 야기된 만성적인 소비경제의 파탄은 국민대중의 욕구불만 수위만 높여 놨다.
아울러 기본적 인권의 유보와 종교를 비롯한 제 문화가치에 대한 통제 역시 반체제세력형성에 도움만 주었다.
급기야 서방세계의 선진기술을 도입치 않고는 각 방면의 기술수준을 단기간에 높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각국정권은 다투어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공산사회 자체의 공격수정과 이에 따른 자본주의식 경제운용방식의 도입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종교가 설수 있는 입지를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공산주의 속에서 가톨릭이 존재하고 있는 근거를 이 같은 가톨릭교회의 외형상의 존재모습 외에 가톨릭의 「속성」자체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가톨릭을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등의 「주의」라는 이데올로기차원을 초월한 「보편성」을 띤 존재로 이해한다면 철의 장막 속에서도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교회의 존재양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가톨릭은 초세기 로마에서「홍제숭배주의」를 추종 않는다고 모진 박해를 받았다. 근세에 들어와서는 이슬람교ㆍ프로테스탄트로부터 숱한 도전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왕조 때 유고사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렸다.
공산주의자에 의한 박해역시 숱한 박해역사의 한 편린이라 한다면 억측일까. 단지 기존의 어떠한 박해자 보다 강력하고 성질이 사납다는 점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닌가. 많은 종류의 무신론 중에서 상대적으로「전투적인 무신론」인 까닭에 가톨릭과 대립되는 영역이 넓고, 대립양상이 심각하게 전개된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뿐.
전 세계 어느 민족이나 계급이든 간에 모두 가톨릭을 믿을 수 있고 믿어야 된다는 가톨릭의 「보편성」을 깊이 생각한다면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구원을 전제로 한 공산주의자와의 대화의 당위성까지 제공할 것이다.
교회는 공산주의가 처음 태동할 단계에서는 이를 무척 경계했다. 비오 9세를 비롯한 역대 교황들은 한결같이 공산주의와 그 체제를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 폐해성을 지적했다.
한편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40주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는 공산주의자체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않은 채 자본주의의 모순점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으며, 소위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교회의 입장과 「인간화의 길」을 계속 밝혀왔다.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교회는 한 차원 더 높여 공산주의를 비롯한 여러 무신론과 적극 대화를 모색할 것임을 천명, 이들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노력을 강조했다.
특히 현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공산권과의 대화에 매우 적극성을 띠고 있다.
자신의 조국이긴 하지만 벌써 3차례나 폴란드를 방문하고 바티칸과 폴란드간의 정식 외교관계의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바티칸은 중공과도 국교를 맺기를 희망하고 있다. 바티칸과 공산국가들 간의 국교수립은 머지않은 장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상적(假想敵)으로 규정하고 있는 공산국가 안에 공산주의자보다는 바로 우리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인이 훨씬 더 많으며 또 그곳에는 진정코 구원해야할 인간 공산주의자들이 있음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이제 또 하나 중요한 물음에 답해보자. 인류역사에 파란을 몰고 온 공산주의는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공산주의가 별나라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엄청난 사회구조적인 악이 그 발흥의 거름이 됐다는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할 것이다.
근대이후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흥망의 기복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요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했다. 당시 신자들이 진정 복음정신에 살고 이에 따라 사회악이 줄었더라면…
북한선교에 관심가져야
역사에서의 가정법은 무의미하다지만 그 가정법은 현재에도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면가치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순례의 제 코스를 잘 밟고 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이 가정법적 질문이 공산주의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대한 역설적인 해답이 될 것이다.
서방세계 그리스도인들은 공산세계에서의 공산주의자의 박해와 마찬가지의 박해를 세속주의와 「배금주의」로부터 받고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이 세속주의는 공산주의와 같은 공개적인 투쟁은 걸어오지 않지만 신자들을 종교적인 무관심으로 빼내가는 점에서 더욱 경계해야할「주의」이다.
끝으로 한국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복음의 빛줄기 한 가닥 찾기 어려운 북녘을 주시해야한다.
북한의 종교적 실태는 북한 당국의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커서 정확히 가늠하기에는 힘이 들지만 지난 3월 성지주일 때 바티칸에서 북한인들의 영성체사실에 대한 외신보도와 지난 84년 가족방문과 선교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고종옥신부의 사례에서 우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선교가능성을 한 가닥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함께 북한선교위원회는 지난21일 「통일사목연구소」라는 북한선교 특별반을 마련하고 있어 북한선교에 서광을 비춰주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북녘에도 내 형제, 내 핏줄이 있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음을 마음속 깊이 새겨둘 때 민족의 통일은 그만큼 앞당겨지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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