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종말은 죽음이다. 죽은 다음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심판의 결과는 천국과 지옥이다.
그래서 인생의 종말인「죽음」「심판」「천국」「지옥」을 사말(四末)이라고 한다.
죽음~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순간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삶이냐 영원한 죽음이냐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모든 삶은 죽음을 통해서 끝장이 나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의 자세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연옥의 보속ㆍ천국의 기쁨ㆍ지옥의 고통이 결정된다.
죽음은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죽음 다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누구도 알 수 없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죽음에 대한 답변을 하셨다. 공자님도 그의 제자 계로가 죽음을 물었을 때 공자님은『우리는 아직도 태어나서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영원한 사멸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인간을 죽음의 운명에서 해방시켜 주신 구원자이다. 그러나「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잘 죽어야 한다. 죽는 법을 알아야한다. 매일 죽는 연습을 하고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은「죽음」을 잘 맞이하는 우리의 삶이다.
「성종의 은혜」라고도 하는데「선종」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잘 살아야한다.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어야한다.
성인들의 가르침은 오로지「죽음」에 관한 삶이었다. 그들은 하루를 살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가서는『내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 순간이 죽음을 준비하는 귀중한 순간이다. 언제 우리의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의 삶을 성실히 사는 것이 선종의 은혜를 받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러하다.
『사람의 아들은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늘 준비하고 있어라』(마태오24, 44)
내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살지도 않을 것이다. 이 순간 하느님이 부르신다면「예」하고 자신있게 하느님의 심판을 맞이 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우리가 이렇게 만 살아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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