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1월 11일
우리를 모욕했던 자가 정오에 사정(使丁ㆍ남자 심부름꾼)한 사람과 함께 용서를 빌러오다. 그는 곤장 26대를 맞았고 그를 하인으로 두고 있던 관장은 그를 해고시켜 버렸다. 사람들이 그에게 훈계를 한후 그를 돌려보내다.
11월 12일
남교우들의 총괄적인 견진성사ㆍ「오소서, 성신이여」가 견진성사의 기도와 함께 노래로 불러지다. 아주 아름다운 의식이었다. 오후에는 여교우들을 위한 고해성사. 여교우들은 고해성사를 보며 주교의 반지에 입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 밖에서 성사를 보려하지않고 끈덕지게 나의 방문 앞을 에워싼다. 내가 성사주기를 중단하니 모두들 질서를 되찾는다.
11월 15일
감사와 판관에게 우리가 오후에 그들을 보러가겠다는 전갈을 보내다. 73세나 되었지만 아직 매우 정정한 감사 이용직이 판관 이학휴, 그리고 현풍의 김 현감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담은 매우 정중하고 훌륭했다. 감사는 기생들에게 우리를 위해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라고 명한다. 하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던 매우 수수한 것이다. 느린 박자에 맞춘 흐트러진 동작이라고는 없는 춤이다.
11월 17일
40명 가량의 고해자. 이분도라는 냉담자는 올해에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불행히도 15명이나 되는 냉담자들이 또 있는데 이들은 돌아올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올해가 흉년이라서 그들이 더욱더 자극을 받지 못한다.
11월 18일
신나무골 향해 출발. 40리길이다. 화룡산을 빙 돌아 10리쯤 가지 금호강이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 북쪽으로 뻗어있는 계곡에 접어들다. 대구에서 20리되는 곳에 이르니 교우가 운영하는 주막이 있다. 그부근의 논과 밭은 대구교우들의 소유이다.
11월 19일
주일. 온종일 고해성사. 어제 준교우들까지 합해 48명에게 고해를 주다. 이곳에 사는 조씨성을 가진가매올(현재 관읍 낙산동의 가마골로 추측)의한 아낙은 영세준비가 아주 잘 돼 있다. 그런데 52세의 이 여인은 혼인조당 때문에 성세성사의 은총을 거절당할 상태에 빠져있다. 그녀는 30년전 합법적인 남편인 첫번째 남편과 헤어지고 두번째 남편을 얻었는데 그와도 헤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오래전부터 세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데, 그와의 사이에 난 아이들 중 맏이가 16세이다. 불행히도 현재의 남편은 그녀에게 천주교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개종하려는 마음도 없다. 첫번째 남편은 예전에는 합천에 살았었는데 그후로는 그녀도 그의 소식을 더 이상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가 영세를 하게되고 照會가 끝나고 나면 로마에 외교인인 남편과의 혼배관면을 요청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11월 20일
長佐洞(莊者洞의 오기인듯) 옹기마을을 향해출발. 칠곡읍에서 30리 거리인 보미면 관내에 있는 마을이다. 29개 교우집중에서 25가정이 옹기굽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4가정은 얕으막한 앞산에서 농사를 짓는다. 이 농사짓는 사람들이 교우들이 개종시킨 신자들이다.
11월24일
강을 따라 10리를 가고 나서야 우리는 내지(內地)의 땅을 만났다. 지난번 낙동강의 범람으로 왼쪽 강가가 심한 피해를 입었다. 조금 더 가니 인동읍이다. 거기서 멀지않은 곳에 고려시대의 무덤이 몇기(基)있다. 조그만 언덕을 넘으니 왼쪽길위에 비문이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외국인들에 반대한다는 대원군의 그 유명한 선언문을 새겨놓은 것이다. 그 비문은 바위 위에 새겨져 있으므로 지워지기가 불가능하다. 용군군의 청을(현 경북 풍천국 풍양면 청운리) 옹기마을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교우 가정12호가 사는 곳이다. 이 옹기마을은 부로가 2년 전에 시작된 곳으로 분명한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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