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12시쯤 우리 일행-군목 던킨 네일러ㆍ헤롤드 뵐켈ㆍ벤과 봄하사관 클리어리 그리고 지이프-은 모든 짐들을 트레일러에 싣고서 경주로 가는 가까운 역으로 달렸다. 오후1시 GI를 뵐켈과 클리어리는 부사에서 며칠간 체류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어느 프로테스탄트 선교회에 머물기로 한 뵐켈 목사와 작별한 나는 가까운 주차장에서 지이프를 몰고 나와서 메리놀 수녀회로 달렸다.
여기서 우리는 크레그 신부, 무쎗 주교, 샤보 신부, 뽀아이요 신부(MEP), 평양에서 오신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님들, 서울서 오신 한국 가르멜 회원들 및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잠시후 나는 기지 성당으로 갔는데 여기서 군종 헌 신부(알바니 출신)을 만났다. 오후 4시에 그곳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12월 20일 집에서 개인미사를 봉헌하고 아침을 먹었다. 베드로(분도회) 수녀가 모든 한국인사제와 수도자들은 일본으로 철수한다는 명령을 가지고 왔다. 원산의 전교사 오씨는 원산에서 탈출한 3백명의 신자피난민들을 위해 쓰레기수거를 요청해왔다.
나는 피난민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성당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받은 보고에 따르면 ECA(경제협조처)의 판단에 의해 피난미들이 성당건물에서 나가는게 옳다는 것이다. 그곳 본당의 장 신부님과 장시간 협의한 뒤, 나는 ECA 책임자인 오스본과 만에게로 갔더니 그들은 내게 천막을 마련해보라고 충고했다. 이 일 때문에 인사부의 필클 소령은 나를 미 8군 민간인 협력위원회(CAC)의 질레트 대령에게 소개했는데 나는 그곳에도 적당한 텐트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구조용 텐트를(군용) 몇 개 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뮤에팅씨가 내일 아침가지 전화로 연락하기로 했다.
▲12월 21일 뮤에팅씨와 통화하려고 몇 차례나 시도했으나 그는 자리에 없었다. 핑클 대령의 민사담당팀과 맥콘 대위에게 나는 21명의 베네딕또 회원명단을 제출했다(사제 1ㆍ수사 7ㆍ수녀 13). 일본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군정 외무부와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2월 22일 레오와 장루도비꼬와 함께 미국 영사관과 민사부로 가서 서울의 외무부와 접촉을 시도해 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레오는 가족들의 일본행 여권을 원했고 루도비꼬는 미국의 연구그룹과 합류하기위한 특별 여행허가를 받고자 했는데 이 그룹은 그가 가족들을 부산으로 피난시키는 사이에서 서울을 떠나버렸던 것이다. 오후 5시 마침내 우리는 베네딕도 회원들의 여권과 출국허가를 요청하는 전문을 외무부에 보냈다.
▲12월 23일 기온이 떨어졌다. 제3병원에서 포터대령으로부터 X레이 검사를 받고 약을 먹은 뒤에 잠자리에 들다.
▲12월 24일 미사를 드리려고 일어나려다가 다시 누웠다.
▲12월 25일 미사 3대를 드릴지향으로 나는 오전 10시에 내방에서(부대) 첫 번째 미사를 드렸다. 그런데 2번째 미사 후에는 침대로 돌아와서 포기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한국인 수녀님들이 오후 4시 기지성당에서 헌 신부가 드리는 대미사 때 성가를 불렀다. 또 수녀님들이 공항성당에서(군종신부 코코란) 드리는 자정미사 때 성가를 불러달라는 초대를 받았으나 시간과 여행조건 등등의 이유로 거절했다.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출신의 레아나드 P1라뤼 대위는 12인승 화물선 SㆍS 메리디트 빅토리오(지휘관 무어 맥코맥)에 1만 4천명의 한국인 피난민을 싣고 북한의 흥남을 출항하여 오늘 부산으로 들어온 것이다. 흥남은 약 일주일전에 우리가 떠났던 항구이다. (내 일기 12월 17일자) 라뤼 대위는 후일 이 영웅적인 공적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1955년에 함장자리를 포기하고 뉴욕ㆍ뉴톤의 베네딕또 수도원에서 분도회 마리노 수사가 됐다.
▲12월 27일 미사를 드린 후 기지 성당으로 가서 대구에서 내려온 셰리 신부(오하이오 신시내티출신ㆍ몬시뇰 로베트셰리 나는 1922년에 가톨릭대학에서 알게 됨)와 상의했다. 그 결과, 나는 군종 토비 신부께 편지를 보내 도쿄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군에서의 사직명을 요청케 했다(메모:내가 원산-흥남지역에 군무할 당시, 셰리 신부는 군대편성에 의한 기능에 따르면 내가 원산대목구장이라고 말했다).
▲12월 28일 1950년을 며칠 남겨두고 나는 아팠다. 도쿄나 10군단 사령부의 명령을 기다리며 의사의 진료와 치료를 받으며 지낸다.
<1951년 1월>
▲1월 8일 10군단 토비 신부가 보낸 명령서를 급사가 가져왔다. 군에 사직서를 내기 위해 도쿄 본부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오후에 짐을 꾸리고 준비했다.
▲1월 9일 도쿄행 항공편을 예약함.
▲1월 10일 공군군종 코코란 신부가 나와 내짐을 부산에서 동쪽으로 9마일 떨어진 K9기까지 지이프로 태워주었다. 이곳이 제5공군기지이다.
오후 3시 30분 4발 더글라스기종인 C54를 타고 잠시 대구에 기착했다가 한국을 떠났다. 저녁 9시에 하네다공항에 도착하여 밤 11시 30분에 애수 호텔에 들었다.
▲2월 10일 약 한달 동안 도쿄의료원에서 스피츠 대령의 감독아래 신체검사ㆍ테스트 및 치료를 받았다. 오늘 나는 군종신부직에서 사임, 군복을 벗고 민간인신분으로 돌아왔고, 도쿄 메리놀 수도원에 거주하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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