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 알려
예언자는 부르심을 받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하고 특정한 순간에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자기가 경험한 종교체험을 증언한다. 미래를 투시하고 예고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현재를 통찰하고 과거 및 미래와 관련하여 현재사건을 해석한다. 하느님의 대변인,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듣고 들은 말씀대로 사는 즉「두루마리를 집어삼키는」사람이다. 하느님의 생생한 말씀을 전하므로 자기가 체험한 역사사건과 결부되어있는 현재의 인간이다 자기 시대의 비판적 지성인이다.
후기 유다교에서는 오랫동안 예언운동이 종식되었으므로(아모8, 12참조) 말씀의 선포대신 율법의 권위와 해설이 부각되었다. 예언현상의 부활은 종말시기의 표징이다(요엘3, 1). 종말기대는 한 예언자의 출현에 대한 기대였다. 『너희 하느님께서는 나와 같은 예언자를 동족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신명18, 15)예수 시대의 유다인들은 예언자들의 출현을 기대하였다. 하느님의 새 계시, 현세의 종말에 대한 선포, 고난의 운명을 겪을 예언자들을 고대하던 시대였다.
메시아의 임박한 도래선언
세례자의 출현은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는 메시아의 임박한 도래를 선언하였다. 예수는 군중들에게 예언자로 보였다. 『그분은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루가24, 19:마르6, 14-16)예수 자신도 이 인상을 긍정적으로 수락하신 것 같다(마태12, 57). 박해를 겪으면서도 사명에 충실한 예언자들의 운명에 비추어 자기 죽음을 이해하셨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루가12, 12). 그런데 그분은 예언자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시다. 권위 있게 말씀하시며(마르1, 27), 『그러나 나는…말한다』어투는 종말의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권위로써 말씀하심을 드러낸다. 예수의 계시는 아버지와의 충만한 일치 안에 있는 아들인 그분 자신의 계시이다(마태11, 27). 예수 안에서 예언자와 메시아는 같은 말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하고 저마다 말하였다. (요한6, 14)
이 칭호가 예수에게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말씀 자체이시다. 하느님의 나라 및 말씀자체이므로 이 칭호가 그분에게 전적으로 부합되지는 않는다. 그분의 죽음도 말씀을 선포하는데 언직에 충실하였음을 반영할 뿐 아니라 구원효과를 내는 죽음이다.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종말적 계시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예언자란 성령의 감도로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이다. 예언자의생애는 하느님의 말씀과 설영에 지배당하는 삶이다. 예수는 말씀을 선포하는 직분에 끝까지 충실한 결과로 폭력에 희생되는 죽음을 겪으셨다. 그분은 자기의 삶과 죽음을 온전히 성령의 감도하게, 또한 하느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내맡긴 예언자이시다.
다른 모든 호칭들을 요약
다른 모든 호칭들을 요약하는 칭호이다. 예수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든 희망을 집약하는 것이 메시아사상이므로 교회가 가장 많은 관심을 두었던 칭호이다. 축복과 관련된 올리브기름을 발리움으로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일에 주요직분을 부여받게 되었다. 왕정시대와 그 후 시대에「야훼의 기름발리운자」라는 표현은 왕을 자칭하였다.(1사무26, 9ㆍ16) 야훼가 이스라엘의 참 왕이시므로 지상의 왕은 아주 뛰어난 방식으로 하느님을 대리하는 자로 간주되었다. 나단에의 해 하느님의 약속(2사무7, 12이하)이 다윗의 영원한 왕국에 내려지는데 이 예언이 성취되지 않고 유배생활을 겪어야했으므로 이스라엘은 마지막 때의 왕을 갈망하였다. 유배이후 메시아 희망이 국수주의 색채를 띠어오다가 예수의 시대에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왕가에서 태어나고 정치적 특징을 띤 왕, 마지막 때의 영웅적 투사로서의 모습을 갖춘 인물로 간주되었다.
예수는 메시아의 존엄성을 분명알고 계셨으나 이칭호의 사용을 꺼리셨다.(메시아 비밀)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했고(마르8, 27-31)악마들도 선언했다. 함구령을 내렸던 예수의 주 관심은 지상 왕국의 건설이 아니고 백성의 해방을 위해 고통과 죽음을 겪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될 수 없는 상황, 수난하고 죽음을 당해야하는 상황 즉 기야파(마르14, 61이하)와 빌라도(15, 2이하)앞에서 자신을 위해 이 칭호를 시인하셨다.
수난과 죽음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하는 메시아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빠스카사건 이후 이 칭호가 정치적ㆍ국수주의적 의미로 사용될 위험이 없어졌으므로 빨레스띠나 공동체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고 희랍계 공동체 안에서는 예수의 추종자들을 위한 이름(그리스도인)이 되기도 하였다. 「메시아」와「다우시의 자손」은 유대인들에게 동의어였다(요한4, 29:7, 40-42:마태12, 23), 예수가 평소에 메시아ㆍ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우기를 극구 싫어하셨던 것과는 달리 예루살렘 입성 때에는 군중의 환영을 허용하신다.
종교재판 받으실 때에는 이 칭호를 거절치 않으시고「사람의 아들」에 비추어 해석하신다. (마태26, 63-64)메시아의 유다교적 의미를 정화시키고 나서 메시아로서의 신원을 밝히신다.
「고통 받는 종」으로서 메시아 사명을 시작할 것이며 사람의아들로서 목숨을 바쳐 완성할 것이고 마침내 천상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다:『그리스도는 영광에 들어가시기 위해 이 모든 고통을 참아 받아야 했던 것이 아니냐?』(루가24, 26)
메시아비밀 밝혀져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시다. 빠스카로서「메시아비밀」이 밝혀졌으므로 초대교회는 주저 않고 예수를 메시아로 불렀다. 호교적 이유와 신학적 이유에서 그렇게 호칭하였다.
구약의 모든 약속이 예수에게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참 메시아이며, 부활로 말미암아 영광의 왕으로 왕좌에 오르셔서 온 인류를 다스리는 왕이 되셨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희망을 성취하고, 고난과 죽음을 통해 사명을 완수하며, 빠스카로써 우주적 왕권을 획득하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칭호로써 예수의 구약과의 깊은 연관, 역사적 삶, 현양을 동시에 나타내는 포괄적 칭호가 되었다. 예수는 고난과 죽음을 겪음으로써 사명을 완수하는, 우리와 결속된 메시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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