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교회는 1906년 10월「경향신문」(京鄕新聞)을 창간하고 언론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 신문은 한글 전용의 주간지였다. 또 그것은 주로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한 종교 신문이었으나 동시에 비교인을 상대로 한 일반 시사 신문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경향신문」의 창간은 당시의 시대적이고 국가적인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을사보호조약(1905)으로 일본에게 국권을 거의 빼앗기게 되자 국신들은 그것이 실력부족에서였음을 자각하고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과 언론을 통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개화(開化)의식이 국민들에게서 싹트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이 맹렬히 전개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므로 교회도 나라 구하는 일에 당연히 참여해야 할 뿐더러 또 그 운동을 올바로 인도해야할 책임을 절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과연「경향신문」은 『우리 신문이 우리나라를 사랑함으로 나는 것이오 우리나라를 사랑함으로 만드는 것이니 이러므로 우리나라 복되기를 위하여 우리는 변변치 못한 마음일망정 그윽히 쓰노라』고 하며 계몽을 통해 동포들에게 유익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 신문발간의 목적임을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교육ㆍ법률ㆍ과학ㆍ농사ㆍ행정ㆍ종교ㆍ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국민을 꾸준히 계몽해 나아갔다. 또「경향신문」은 개회신문으로 자타가 인정할 만큼 개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계발 없이 진정한개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수시로 깨우쳤다.
이와 같이「경향신문」은 계몽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란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저항역사라면 과연「경향신문」이 본란에서 취급될 만큼 저항지로서의 역할도 했던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은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고, 정치에 무관한 신문, 이른바 정치 불간섭주의를 언명하고 있던 만큼 정치문제에는 어쩔 수없이 소극적이었다. 예컨데 의병운동(義兵運動)에 대해「경향신문」은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현실적인 입장에서 그것이 실효가 없고 공연히 희생만 초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경향신문」은 단순한 종교지가 아니고 동시에 시사 신문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문제에 무관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경향신문」은 이와 같은 정치문제에 대한 기사도 싣고 논평도 실었으며 또 그것을 통해 일제의 침략행위를 그 나름대로 규탄했다. 아래 한두가지 사실만을 지적하고자한다「경향신문」은 일본인의 토지 수탈행위를 매우 중시하고, 그러다가는 50년이 못되어 대한국은 이름뿐인 대한국이 되고 말 것이라고 하여 돈 욕심에서 국토를 팔아먹는 국민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고 또 우리 인민이 잘 사는 것이고 또 우리 자손들이 산고 두메 속에서 굶어죽지 않는 것이고, 또 일인의 하인 노릇을 안 하는 것이고, 또 의리를 중히 여기고 나라와 동포를 사랑하고 것이다.
1909년 12월, 일진회(一進會)에서 한일합방을 건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경향신문」은 차제에 매국노인 일진회는 사라져 마땅하겠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합방이 추진되지 않을까 불안스럽다고 하며 한일합방을 반대하는 논설을 내보냈다. 우리나가라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는 우리나라 사람이 일인에게 해를 입은 것뿐만 아니라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옴으로서 우리나마 독립이 없어질 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이 합방을 시행하면 우리나라 독립을 아주 없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런 일을 안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대한의 개화와 또 대한의 개화와 또 대한의 자주독립을 지켜주기 위해 대한에 와 있는 것이라고 늘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여나 일진회원들의 말을 빌어 합방은 일본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밖에도「경향신문」은 일인과 일본군의 만행을 비난하는 보도기사를 자주 실었다. 그런데 1910년 4월22일자에 거재된「금수 같은 헌병과보조병」이란 기사는 결국 문제시되어 일본당국으로부터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경향신문」은 이후에도 치안방해라고 하며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날지 모르겠으나 필요한 기사는 계속 게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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