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마다 맞는 사순절을 또 맞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번번히 우리는 지나간 사순절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해오던 것이니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타성적이고,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말하자면 뚜렷한 의식이나 결심없이 맞이하고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라. 너희에서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오11,21)
1)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인 수요일,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는다. 그 재는 지난해 성지 주일 날 받은 성지를 태워서 얻은 것이다. 이것은 슬픔을 나타내고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회개를 뜻한다.『다말은 머리에 먼지를 들쓰고 걸치고 있던 장옷을 찢으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채 목놓아 울면서 돌아갔다』(사무엘하 13,19). 다니엘서에는『나는 삼베를 걸치고 단식하며 먼지를 들쓴채 주 하느님을 우러러 기도를 올리며, 자비를 빌었다』(9,3)라고 하였다. 요나 예언자의 말을 듣고 『니니베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옷으로 갈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고』(요나 3,6), 짐승들까지도 이렇게 단식하게 하였다.
2) 머리에 재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본시 재란 태우고 나면 본래의 모습이나 흔적조차 볼 수 없게 되고, 또 그런 재는 바람에도 흩날릴 뿐, 쓸모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티끌이나 재만도 못한 주제에 감히 안됩니다.』(창세기 18,27)하였고, 욥도『수렁에 내던져서 마침내 이 몸은 티끌과 재가 돼고 말았네』(30,19)하였다.
그래서 재를 받는다는 것은 아무데도 쓸데없는사람, 흙으로 돌아간 사람,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특히 사순절동안 우선은 단식과 금육식을 권한다. 그밖에 자기 기호에 맞는 음식도 폐한다. 이것은 맛있는 음식을 절제함으로써 좋아하는 것을 희생한다는 데에도 뜻이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육신의 힘을 빼어 정욕이 발동되지 않게 하는데에도 뜻이 크다. 힘이 세면 정욕도 강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수도자들은 공동 생활이라는 울타리가 있기는 했지만 자극을 주는 술이라든가 코피같은 것을 마시지 않고 살았다. 육신의 자극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힘이 약하면 자극을 덜 받고, 유혹도 그만큼 덜 받게되기 때문이었다.
3) 그처럼 단식을 하며 자신을 억제하면 몸이 가볍게 되고 정신도 맑아지게 된다. 이래서 지적활동을 잘하게 하고 영적 생활에도 도움을 준다.
4) 단식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과 영광을 안게된다. 상사가 났을때는 심리적으로도 으례 식음을 전페하게 되지 않는가? 교회에서 정하지 않아도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분이 돌아가신 날 음식을 절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의 수난과 극기심은 세말까지 두고두고 곡을 하고 목놓아 운다해도 넉넉할 수 없는 슬픔과 비극의 절정이 아닌가?
5) 위에서 말한대로 고신극기로써 육신의 힘을 빼면 그 만큼 영혼은 강해진다. 이것은 어느 씨앗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씨앗이 땅속에서 썩어야 싹이 트고 열매를 맺게된다. 씨앗의 몸이 썩어야 씨앗의 눈이 썩은 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썩은 몸에서-썩은 것이 거름이 되니까-영양분을 받아 싹을 땅 위로 내밀수가 있게 되며 자라는 것이다. 씨앗의 몸통이 썩지 않는다면, 그 눈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고 따라서 그 씨앗은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요한12,24~25).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썩어야, 즉 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돌아간 재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름이 되어 생물을 자라게 하는 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여러 가지 절제와 희생과 고행은 결국 육신을 썩히는 역할을 하며, 더 나아가서는 영혼이 힘껏 자라며 선행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다.
6) 육신을 썩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회개했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마음의 진정한 회개를 말하는 것이다.『굵은 베를 두르고 재를 깔고 눕기나 하면 그런 것으로 다 될 듯 싶으냐? 이게 이른바 단식이라는 것이냐? 그러고도 야훼가 이날 너희를 반길듯 싶으냐?』(이사58,5).
그러니까 단식이나 금육식하였던 것을 두었다가 다음 번에 내가 다시 먹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단식을 해서 자신만 좋을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과 만족을 주는 것이라야 한다.『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다. 억울하게 묶인 이들을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른체 하지 않는 것이다』(상동7~8절).
기뻐하신다는 단식의 내용을 보면, 예수께서 최후 심판에 대한 말씀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마태오25,31~46). 그래서 사순절에는 단식과 금육식, 그리고 다른 고행으로써 이기적인 것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데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좀 불행해짐으로써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펴신 행복론이다(루가6,20~26).
7) 한국 동란때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은 외국인들이 먹고 남았기 때문에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먹을 것, 마실 것을 희생하여 모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는 그들을 본받아 희생하여 우리보다 더 어려운 나라나 교회를 돕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흔히 하는 말대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해마다 구호처럼 재계하고 회개할 것을 부르짖기만 하지말고, 구체적으로 뭔가 한가지씩 이뤄지게 해야겠다. 예를 들어 2백만 교우들이 사순절동안 한사람이 천원씩만 낸다면 벌써 12억원이 된다. 해마다 12억이라는 거액이 있다면 연차적으로 국내의 어떤 일이라도 개발 혹은 차욱차욱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순절동안 회개한 표로서 뭔가를 희생하여 나눈다면 우리 속담대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되고 또 이바지하는 바가 큰 것이다.
『웃만 찢지말고 심장을 찢어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 주는 가여운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요 엘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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