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경기도용인지방에서 일어난 한국여자에 대한 일본 헌병의 만행을 폭로한 1910년 4월 22일자「금수 같은 헌병과 보조원」이란 제하의 기사로 인해 한때 압수당하기는 했으나 그 후 합방이 될 때까지는 별사고 없이 간행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합방직후인 9월 10일 프랑스 영사관을 통해 이후 신문이 종교적인 사항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일본당국의 공문이 교회에 전달되었다. 즉 조선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정기간행물은 통감부의 새 출판규칙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데 단종교지는 그 목적만 충실히 따른다면 그 규제에서 면제될 것이다. 그러나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신문간행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성격을 벗어난 기사를 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유일하게 폐간 당하지 않고 있던「경향신문」도 종교사항에 국한시키지 않고 시사 신문으로 계속된다면 폐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 사실 합방 때까지는 일본신문을 제외하면 한국 신문은 모두 폐간되었었다. 물론 영국인 베델(Bethell, 裵說)이 경영하던「대한매일신보」가 남아있기는 했으나 합방과 더불어「매일신보」로 이름을 고치고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되고 말았다.
마침내 12월 5일「경향신문」사장인 드망즈(D-emangeㆍ安世華)신부에게 경시청서 출두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호출의 사연인즉 이제 치외법권이 없어졌으니 다음 세가지 부류의 신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①엄격한 종교적 인쇄물:3일 전에 검열을 거쳐야함. ②한국인 신분:한국인이 경영해야 하고 보증금은 3백원. ③일본인 신문:보증금은 천원, 유럽사람도 경영할 수 있음.
이와 같은 제의 앞에서 교회당국은 신문을 계속 하기로 하고, 그래서 제3부류를 택하기로 결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유럽인도 경영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드망즈 신부는 12월 9일 다시 경시청으로 가서 신문을 계속하기 위해 일본법에 따라 소정의 보증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러나 총독부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고, 사실은 제1부류의 선택을 강요하러했었다. 오랜 토론 끝에 총독부에서는 마침내 보증금을 내지 않고도 신문을 계속해도 좋다고 양보했다.
그러나 신문발행 3일전에 원고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12월 30일, 드망즈 신부는 23일자 신문 편집 원고를 검열받기위해 경시청에 보냈다. 그런데 벌써 그날 저녁때 일본 순경으로부터 내일 10시에 경시청에 출두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정시에 출두한 드망즈 신부는 새빨간 잉크로 구멍투성이다 된 검열지를 보고 어이없어서 고치지 않은 곳이 아직 남아있느냐고 반문을 하고는 돌아왔다.
아무런 기준도 없는 그와 같은 일제의 독단적인 검열자세 앞에서는 도저히 신문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드망즈 신부는 12월 30일자 미지막 신문은 검열을 거치지 않고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12월 23일 부득이「경향신문」을 폐간하고「경향잡지」로 변경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신부들에게 보냈다.
이 회람 공문에서 결국 신부의 폐간으로 출판을 아주 중단하느냐아니면 신문의 별지인「보감」(寶鑑)을 살려 순종교지로 개편하느냐 두 가지 문제밖에 남지 않았는데, 현재로서는「보감」으로 지속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교구장의 의향을 따라 후자를 택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이 그칠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언젠가는 「경향신문」이 다시 빛을 보게될 것이라는 희망에서「경향」이란 제호만을 이어받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신문이 아니기 때문에「경향잡지」라 이름하고 월2회 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11년 1월 15일자로「경향잡지」의 첫 호가「경향신문」의 1910년 12월 30일자 220호를 이어받아 통권 221호로 출간되었다,
또 회람은「경향신문」의 앞날을 위해「경향잡지」의 존속여부는 오직 교우들의 관심 여하에 달려있는 만큼 앞으로 1년이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폐간호(1910ㆍ12ㆍ30)에서 독자들에게 폐간을 알리는 동시에「경향잡지」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이리하여「경향신문」은 4년 만에 폐간되었다. 「경향신문」에 대한 동경은 광복이후 교회당국에서「경향」이란 제호를 이어받은「경향신문」이란 새로운 언론기관을 출범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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