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과 배고픔, 인간적인 고통에 지친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고통의 순간마다 하느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괴롭힌다. 탈출 준비과정에서부터 드러내 보이신 하느님의 전능은 파라오군대의 추적을 결정적으로 따돌린 갈대바다의 기적,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소시킨「마라의 물」과 만나, 메추라기, 그리고 바위에서 솟는 샘으로 매 순간마다 드러나지만 이스라엘의 불평은 그 매 순간마다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 안에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침 7시에 출발, 저녁 5시 도착, 꼬박 10시간을 달려 우리는「시나이산」을 바로 가까이에서 올려다 볼 수가 있었다. 저녁노을을 눈부시게 받고 있는 시나이산(게벨무사ㆍ모세의 산)은 여러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각각 다른 빛깔로 물들어 한껏 신의 기운을 담고 있는 듯 신비스러워 보였다.
시나이반도 남단, 성 가타리나산과 나란히 솟아있는 시나이산은 10시간의 행진 끝에 조금은 지쳐있는 순례자들에겐 쉽사리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기세였고 우리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듯 했다.
바로 내일, 「라마단」이 시작되기 때문인지 시나이사 바로아래 호텔 저녁식사는 무척이나「소박」했다. 해가 뜨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해가 져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는「라다단」은 모슬렘에게 있어 연중최대의 종교의식.
때문에 모슬렘인 현지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이집트에서의 남은 일정동안 매 식사 때마다 우리 일행의동정어린 눈길을 받아야했다.
내일의 시나이산 등정을 위해 순례단은 출애굽 성경봉독과 기도를 통해 각자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야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켜 그들과 장엄한 계약을 맺으신 시나이산 사건, 바로 그 현장을 눈앞에 둔 탓인지 작은 흥분과 불과 몇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은 잠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새벽4시. 곳곳에 흩어져있는 각숙소(빌라같이 생긴 돌집으로 여러 개의 집으로 분산돼있음)마다「벨보이」가 문을 두드리며「모닝콜」을 해 주었다.
현대문명의 최고 이기중의 하나인 전화가 각 숙소까지 연결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사막의 새벽은 추웠다. 있는 대로 옷을 겹쳐 입은 어둔한 몸짓과 졸린 눈을 비비며 시나이산을 향해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2250m. 어둠속에서눈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그곳은 너무나 아득한 곳에 있었다. 갈대바다를 건넘으로써 신체적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이 정신적인 해방을 위해 시나이산에 집결한 것처럼,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영적갈증을 채우기 위한 참다운 구도자의 자세가 되어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로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시나이산의 정확한 위치 역시 아직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 현재 시나이산의 위치는 9개의 주요이론에 따라 시나이반도 전역에 9개의 시나이산이 산재해있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분명치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선택한 시나이산은 시나이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화강암 산으로 전승에 의해 가장 가깝게 인정되는 바로 그곳이었다.
동터오는 아침, 시나이산은 변화무쌍한 자태를 드러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산행, 여독과 피로가 겹쳐 지친 상태 속에서 순간순간 포기라는 유혹이 매달렸지만 순례자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드디어 정상. 『너희가 내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고 뭇 민족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출19, 5~6)약속한대로 출애굽의 하느님은 당신백성을 만나시기위해 친히 시나이산위에 내려오게 된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 하느님 야훼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가. 부모를 공경하여라…』이른바, 십계명, 야훼 하느님은 이곳에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으며 이스라엘은 그분을 섬기는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십계명을 받은 바로 그 장소라는 곳엔 그리스정교회 소속의 경당이 하나 외롭게 서있었다. 3시간의 사투(?)끝에 역사적인 장소에 발을 디딘 우리의 기도는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모세를 통해 받은 십계명은 모든 하느님 백성의 생활규범이 있기에 십계명의 의미는 더할 수 없는 깊이로 우리가슴에 와 닿는 듯 했다.
이로써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로 선택을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하느님만을 경배하며 다른 민족들에게 하느님을 알려야할 특별한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이집트에서의 순례는 시나이산을 정점으로 하나의 매듭을 지었다. 짜여진 일정과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우리의 출애굽 여정은 속 빈 강정처럼 겉만 요란했다. 모세와 그 백성들이 걸었던 사막에서의 고통도, 갈증과 배고픔도 우리의 순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의 현장은 우리에게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떠나서는 약속의 땅도 자유와 해방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참으로 값진 교훈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하느님구원계획의 두 가지 정점 중에 하나로 기록되는「시나이산」을 거친 우리는 또 다른 정점의 하나인「골고다산」을 향해 순례의 길을 재촉했다. 이스라엘은 우리 순례의 다음 행선지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