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4월 4일
오늘 내가 없는 사이에 아펜젤러의 서명이 되어있는 조선말 편지가 배달되었다. 편지의 내용인즉 허락 없이 우리 땅에 들어왔다가 나가달라는 요구에 저항을 하며 손에 돌까지 움켜쥐었던 프로테스탄트 교회 측의 5명에게 가해진 처벌에 대해 소(訴)가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이 편지가 진짜일까?
4월 23일
정오가 조금 못되었을 때에 대성당의 발판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아치를 허물어 내는 일을 하던 청국인 벽돌공 6명이 땅위로 떨어졌다. 그들은 상처를 입긴 했으나 전혀 중상은 아니다. 천주님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그리고 지극히 복되신 베네딕또 성인은 찬미와 감사를 받으소서. 드가르강 부인이 우리 대성당의 기둥들에 발생한 사고소식을 듣고 성모 칠고를 기리는 뜻으로 7천프랑을 내게 보내오다. 「천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5월 6일
또 다시 동학도들이 말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에 전라도 감사가 전보를 보내왔다. 수많은 동학도들이 집결하여 벽보를 붙이고, 양반과 부자들을 습격하고 있는데 감사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로는 그들에게 저항할 수가 없으니 서울에서 병사들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수백명의 병사들이 배편으로 전라도 감사에게 파견되었다.
5월 7일
오늘 10년 전부터 거처해온 궁(宮)을 떠나 1882년과 1884년 두 차례에 걸쳐 반란의 화를 당했던 옛날 궁으로 다시 들어가 정착한다.
르페브르씨의 방문, 동학도들이 전라도와 충청도의 선교사들을 기습하지 않을까 염려되니 그곳 선교사들을 잠시 서울로 오게 하라고 독판이 그에게 요청하였단다.
5월 8일
오후 3시경, 석회 운반인들이 석회 운반인들이 석회 창고에 들어가고 난 후 갑자기 창고 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 사람들의 부주의 때문일까. 최근에 내린 비 때문에 불이 붙은 석회가 아직 덜 꺼진 때문일까? 잠시 동안 지붕이 불길에 휩싸였다. 다행히도 북서풍이 불어 불길이 대성당과는 꽤 멀어졌다. 우리에게로 숱한 이웃의 구경꾼들이며 도둑놈들까지 몰려들었다. 하지만 거기에 노략질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해액은 걱정했던 것보다 적었다. 천주께 감사!
5월 13일
목요일에 제물포에 당도한 포르페호는 우리에게 나가사키에서의 우리 순교자들의 유해를 실어다 주었다.
6월 4일
왕이 전라도의 사건들로 인하여 노심초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궐에서는 기생들의 춤과 노래로 매일 밤을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다.
6월 6일
오늘 아침에 빌모 신부가 고산에서 6월 1일에 쓴 편지가 당도하다. 폭도들이 지난 31일 아침에 전주를 점령하였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성 밖의 지역에 불을 놓고 남문을 통해 들어갔다고 한다. 보두네 신부는 제 때에 4개의 짐 꾸러미를 들고 도망나올 수 있었다고. 그의 집은 아마도 불에 타버렸을 것이라고 한다. 빌모 신부도 거처를 버리고 남몰래 다른 교우들의 집으로 가서 정착하였단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죠조 신부는 위험에 처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6월 13일
오늘 아침 7시에 일본 병사들(대부분이 배에서 내린 해군들)이 제물포를 향해 출발하였다. 하지만 낮 동안에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다른 병사들이 그들 대신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5시경에 8백명(어떤이들은 1천명이라고 한다)의 병사로 이루어진 군대가 촘촘히 열을 지어 남대문, 구리개, 명동, 진고개를 거쳐 도착하고 있음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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