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도시화 현상으로 점차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시골 공소들. 한국교회의 모체라볼 수 있는 공소는 아직도 많은 신앙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지만 최근에 들어 이러한 공소의 운영문제는 교회를 생각하는 사람들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시골 공소를 위해 거의 반평생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사람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잠시 숙연케한다.
엄충구 할아버지(요한ㆍ67세). 그는 62년부터 지금까지 공소 회장직을 맡아 오면서 공소를 이끌어 온 신앙의 파수꾼이다.
6ㆍ25당시 최후의 격전지로 이름이 높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휴전선이북으로부터 험준한 계곡을 끼고 도도히 흐르고 있는 남대천을 따라 서울쪽으로 약8km정도 내려오면 널직한 평야가 그림같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80호 가량의 촌락이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 마을입구 약간경사진 곳에 위치한 20여 평규모의 작고 아담한 교회가 엄충구 할아버지가 25년 동안 이끌어 온 연동 공소이다.
지난 60년 설립된 연동공소는 농업과 양어업을 주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곳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따뜻한 보금자리다.
공소설립 2년 후 부터 공소회장직을 맡고있는 엄충구 할아버지는 이곳 사람들에게 「회장님」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이 마을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다.
80호 가구를 통 털어 3백여명의 주민에 신자수는 평균 60세전후의 노인 40여 명에 불과하지만 엄충구 할아버지는 공소에서는 교리선생ㆍ상담자ㆍ사제대리역할 등을 -마을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나 기쁜 일을 함께 나누는 이웃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 1919년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해방되기 바로전 원산중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의정부에서 공직 생할을 한 것 말고는 줄곧 고향에서 살아오고 있는 엄충구 할아버지가 공소회장직을 맡게 된 것은 부인 김옥순 (헬레나ㆍ62)씨의 권고에 따른 것.
독실한 신자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김옥순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입교했고, 당시 고향에 설립된 공소를 맡아 일할사람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엄충구 할아버지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공소에서 일하기를 자원했다.
예전에 비해 신자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1년 예산이라야 고작 1백만원도 채 안되는 형편이지만 공소신자들의 신앙심은 아직도 마을 전체를 이끌고 있다.
『한창 바쁜 농번기 때에는 미사 참례자수가 서너 명에 지나지 않아 멀리서 찾아주시는 본당 신부님께 얼굴을 들지 못하는 때가 많다』고 말하는 엄충구 할아버지는『이곳 공소들이 재정난과 사람부족으로 마을회관이나 창고로 사용되는 것을 볼때 면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낀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체 한국농촌이 겪고 있는 현상이지만 공소에서는 젊은이들이 절대 부족하기 떄문에 적절한 대책이 없는 한 시골에 있는 공소는 자멸될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는 엄충구 할아버지는 그렇지만 연동공소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찬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가을 자식들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고 신자집을 방문, 공소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엄충구 할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정정한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부인 김옥순 씨와 함께 현재 철원군 김화옵 청양 2리에서 양어장을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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