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순례는 예루살렘 입성으로 본궤도에 오르지만 예루살렘 입성은 베들레헴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시작될 수가 없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으로 약8km, 20리 떨어진 지점, 「예루살렘」과「네게브」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상에 자리하고 있다.
다윗의 고향이며(사무엘상 17장12~15절)그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을 발리운 곳이기도 한(사무엘상16장 1~13절)「베들레헴」은 이미 구약의 기록을 통해 메시아의 탄생이 예고된 장소로 등장한다.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미가5장1~2절). 그 예언은 구세주의 탄생으로 그대로 적중하고 베들레헴은 인류구원사의 일대 전기를 이루는 희망의 장소로 드러나게 된다.
머리를 꼿꼿히 세우고는 통과할 수 없는 예수성탄 성당의 비좁고 낮은 입구에서부터 순례자들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오신 그리스도 탄생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금빛갈의 별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바로 그 자리가 아기예수 탄생지점.
『그 무렵에 로마황제 아우구스또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동네를 떠나 유다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아 차서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까2장1~7절)
그리스정교회가 관리하고 있는 이곳은 공중에 매달린「향로」들과 여러 장식들이 다소 낯선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말구유 탄생의 의미를 묵상하는 순례자들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감회를 누를 길 없다. 말구유-큰 밥통에서 나신 참의미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험준한 시나이반도 그 사막의 길을 한걸음에 달려오지 않았는가.
12월 24일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1월 6일에는 그리스정교회가, 그리고 1월 18일에는 시리아정교회가 각각 예수성탄 미사를 봉헌하는 전례 일정은 침략과 파괴당하기를 반복해온 베들레헴, 아니 이스라엘 역사를 한눈에 읽게 해주고 있다.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후 그리스 로마 등 세계각지로 흩어진 유대민족이 이스라엘 땅에 정착을 시작한 것은 1880년대. 국가건립의 꿈을 세운 이들은 예루살렘 외곽에서부터 자리 잡기 시작, 1905년 지금의 텔아비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1917년 터키로부터, 1947년에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를 벗어나지만 이스라엘의 운명은 곧바로 아랍과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독립전쟁이 바로 그것. 1백 50만(아랍)대 60만(이스라엘)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고 이스라엘은 독립을 쟁취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독립은 곧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를 야기 시키고, 독립 후 무려 5차례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2만 7백 70평방킬로미터 면적에 인구 4백25만명(세계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구는 1천3백만명). 이중 90%인 3백 80만명이 유태인이며 3ㆍ2%에 해당하는 13만정도의 크리스찬이 이곳에 살고 있다. 56년 이집트와의 전쟁 후 획득한 시나이반도를 비롯, 67년 6일 전쟁 때 구 예루살렘, 헤브론, 골란고원을 포함 베들레헴을 차지했으며 82년 레바논을 침공, 현재 30%정도를 점령한 상태.
뺏고 빼앗기는 전쟁의 수레바퀴 속에서 피로 적셔진 성지 이스라엘은 아직 전쟁의 기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화약고」로 대립과 분쟁이 쉴 사이 없이 전개되는 이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의 탄생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야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마지막 계획은 무엇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서운 권능으로 그들의 적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힘의 하느님, 갈대바다를 가르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를 채워주신 야훼 하느님을 체험한 이스라엘로서는 보잘것없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 탄생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쉽사리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도 잠시 든다.
때문에 하느님의 불림을 받은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자긍심과 자존심으로 뭉친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영원한 복지로 인도할 메시아, 영광의 왕을 고대하며 살고 있으리라.
3백25년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건립, 봉헌한 베들레헴의 예수성탄성당은 614년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거의 대부분의 교화와 수도회가 파괴되는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파괴를 면하게 된다. 따라서 건립당시의 바닥장식과 기둥ㆍ내부벽 상당수가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교회로 남아있다.
베들레헴 도착을 위해 순례자들은「욧바다」에서 출발「사해」를 끼고「소돔」을 거쳐「맛사다」「엔게디」「꿈란」그리고 베타니아에 이르기까지 하루 종일 바쁜 순례에 자신을 맡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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