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돌을 맞이하여 본보가 보도한 사건 중 그 당시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 몇 개를 추려 「그 후」를 추적해본다.
60년 3월 20일자 본보에 「가톨릭의대 제1회 수석졸업생 김부성씨」와 72년 3월26일자의「가톨릭연구를위해 불란서 유학간 윤호진스님」,82년 9월19일자 「한국 최초의 쌍둥이사제 김윤태ㆍ용태신부」의 「오늘」을 각각 알아본다.
『여보세요. 아, 본당 신부님이십니까? 저 오뚜기 성당 군종신부입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읍니다. 신부님께서는 고생이 많으시겠죠』
몇마디 인사말이 오갔다. 상당히 정중한 어투로 보아 언뜻 선후배지간이나 무척 어려워하는 사이 정도로 짐작된다.
그러나 두 사제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류(類)의 전화대화에 내심 불안감마저 갖게 된다. 언제 그 「정중」의 선이 무너지고 갑작스럽게 웃음이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윤태(胤泰)ㆍ용태(用泰) 신부. 이들이 한국교회 최초의, 또 유일의 쌍동이 신부임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란성 쌍동이로서 얼굴모양, 목소리, 습관까지 비슷하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하나 없을 정도인 이들 사제가 평소와는 달리 일부러 형식을 갖추려는 모습이 「하나도 어울리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55년 7월 2일 출생. 성신중학교→성신고등학교→가톨릭대학을 거쳐 82년 사제서품. 서품 때까지 28년간 한 번도 떨어져있지 않았고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꾸준히 걸어왔던 이들.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구별할 수 없어 신학교 시절 급우들로부터 그냥『태야』라고만 불렸던 이들은 쌍동이 신학생 쌍동이 부제ㆍ쌍둥이 신부를 거치면서 매스컴은 집중세례를 받아 늘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곤 했다.
74년 5월 5일자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는 3면 톱기사에 「쌍동이 신학생 나란히 사제의 길로」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신학교 입학을 관심있게 다루고 있다.
『윤태군과 용태군은 국민학교 시절 아현동본당에서 복사를 했고 이문동 신부의 추천을 받아 당시 성신중학교에 입학했다.
이들은 지금은 폐교된 성신중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이 됐고 금년에 성신고교를 졸업했는데 재학중의 성적은 중간정도였단다.
앞으로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신부가 되는게 포부라는 형제는 존경하는 성인이 누구냐고 묻자 요한 돈보스꼬 성인을 가장 본받고 싶다고 선뜻 대답한다』
이어 81년 10월 25일자 가톨릭신문은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쌍동이 부제가 탄생했음을 알리고 있으며 그로부터 1년 후 82년 9월 19일자 가톨릭신문은 「한국교회의 경사」라는 제목의 쌍동이 사제 탄생 기사를 싣고 있다.
이 기사는『최근 특별한 축복의 징후가 뚜렷이 현실로 나타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쌍동이 사제탄생. 국내 주요일간지들이 일제히 「한국최초 쌍동이 사제 탄생」이라는 제하의 화제기사를 만들어냈던 이 사건은 2백주년을 바로 목전에서 맞이하게 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충분히 경사임은 틀림없다』고 진단하면서 사제 서품 이후 두 쌍동이 신부가 한국교회의 새로운 경사라는 돌풍에 휘말리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기자들조차 필름을 현상하고도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몰라 서로 뒤바뀐 사진을 싣고도 왈가왈부할 정도로 너무 닮은 이들. 28년을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기에 구태여 전화통화가 필요 없었던 이들.
이들도 이제는 사제서품과 함께 5년간의 이별을 맛보고 있다. 형 윤태신부는 금촌본당 주임으로 동생 용태신부는 오뚜기성당 군종신부로 각각 별거(?)아닌 별거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을 잘 구별할 수 없었던 신자들도 두 사제가 함께있는 자리에서는 어느정도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외형도 조금씩 달라져갔다.
그 첫 번째 기준이 머리카락. 나이에 비해 두 사제모두 훨씬 머리카락이 많이 없어져 반 대머리 상태이지만 동생 용태신부가 군종인 관계로 머리길이가 조금 짧다. 또 군인의 신분인 동생신부가 얼굴이 더 검은 것도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머니 손정자 여사(64ㆍ요안나)는 동생신부의 목에 점이 있는 것으로 구별하기도 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있고 사목내용도 틀리지만 같이 있을 때나 멀리 있을 때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주위에서는 입을 모은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를 하고 최소 1주일에 한번 이상은 얼굴을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판공 성사 때는 동생신부가 원정을 와서 도와주고 군부대 성모의 밤에는 형신부가 원정을 가 서로 간에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자연 외로움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동생 용태신부는『포천에 앉아서도 금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다』면서『가장 어려울 때 하느님 다음으로 찾는 사람이 바로 형 신부』라고 형제적 교감대를 이야기했다.
형 윤태신부도『나를 지키는데 동생신부가 있음으로써 큰 도움이 되고 서로 사목상 어려움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사제생활에 좋은 자극이 된다』며 그 점을 다른 사제들도 무척 부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신부의 군종 장교 훈련 때 새까맣게 탄 얼굴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는 형 신부. 왜 본당에서 군종후원회활동을 도와주지 않느냐고 힐책하는 동생신부.
사랑을 아는 사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제를 희망하며 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 쌍동이 사제에게는 교회의 기대, 사회의 관심과 함께 서로를 받쳐주는 따뜻한 형제애가 있기에 신학교 입학 때나 서품 때나 지금의 사제생활에서나 늘 그 열정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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