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산문부문 우수작>
『이모, 오늘 기분이 언짢으신것 같이 보여요』여느 때와 똑같이 성경책과 안경을 옆에 두시고 뜨개질을 하시는 어느 저녁시간, 난 이모님께 여쭈었다. 그랬더니 이모님께선, 『그래. 낮에 「데레사의 집」에 다녀왔단다. 내가 갔더니 현주가 내 손을 저의 뺨에 대고 비비며 그렇게 좋아하질 않겠니. 몇년전 교통사고로 부모님도 다 잃고 혼자 거기 들어왔는데, 반신불수에 말도 제대로 하지못하는 그애의 얼굴이 어쩜 그리 고운지…. 난 너무 안스러워 아주머니께서 기도를 하실 때에도 자꾸 고이는 눈물을 닦느라고 혼났지』하시는 말씀에 어머님께서도 한마디 거드셨다.
『우리는 몸이 성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려야 해』이 짤막한 대화에서 느낀 현주의 고통은 「데레사의 집」모든 가족들의 고통으로,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내게 엄습해 왔다. 나는 이렇게 건강한데, 현주는 왜 매일 아픔의 계속됨에 시달려야할까? 내가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현주는 왜 항상 자리에 누워있어야 하나? 나는 좋은 사람이 보고싶을 때 달려가서 보고 편지도 쓸수 있는데, 왜 현주는 그들이 찾아와 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난 언젠가 우리 신부님께 서신으로 이런 질문을 한적이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의 시작이있기 전, 한 처음이 있기전에는 깊은 암흑 속에 하느님 혼자 계셨나요? 그러면, 하느님께선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 땅도 하늘도 없었을 그 당신만의 공간에서 어떤 형태로 얼마동안 계셨읍니까? 그리고, 한 처음이 있게된 바로 그때가 왜 꼭 그때이어야만 했을까요?」라는.
나의 이 우매한 물음에 누가 명쾌한 답을 줄 수 있겠는가. 엄마도 이모도 신부님도 이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다.
오직 우리에게 온갖 은총을 내려주시는 천주의 품안에서 그 분의 은총을 받을 준비를 하는 나의 태도에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거거중지요, 행행행리가이라」고 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시간에 창세기 제1장 1절을 믿어야 평화가 온다고 하셨다. 나를 향한 대답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베에토벤의 웅장한 음악이나 모짜르트의 천재적 감성이나 쇼팽의 감미로운 선율의 시원함도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난 생각했다. 가고가는 가운데 알게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되듯, 나도 하느님의 축복을 정성스레 받는 커다란 그릇이 되겠노라고.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자신만이 가장 크고 가장 심각한 고통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들이 아무리 괴롭다해도 그것은 자신의 것만큼 크다고는 생각지않는다. 오히려 「별 것도 아닌 것을 갖고 저렇게 죽는 소릴 하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위로를 해준다해도 그것은 자신의 멋에 겨워 위선에서 나오는 행동일 때가 많다.
말없고 차가운 수 없는 사막을 향한 우리들의 삶!
그러나, 삶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담는 그릇에 따라 물의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유동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말없고 차가운 사막의 문은 우리 공동체의 따뜻함과 다정으로 얼마든지 부숴버릴 수 있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인생의 고통은 우리 공동체의 사랑과 인내로 삶의 의욕의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 있다. 나는 이제 선잠에서 깨련다. 이제는 거짓과 위선의 체면이 있는 모든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오직 저 꾸밈없는 하늘다운 빛자리로 내 마음을 이끌련다.
잠시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자. 육교에서, 지하도에서, 성당 문 앞에서, 거리의 이 곳 저 곳에서 앉은뱅이로, 맹인으로, 팔의 뼈가 등이 굽은 오염된 물고기처럼 굽어진 어린 아기로, 다리가 없어 어떻게 다닐지도 의문스런 할아버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제까지 예수님을 모른 척 했다. 불쌍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다니면서 그들을 다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하며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현주의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저의 영혼속에 깊이 파고드는 분이시여, 오늘도 이런 새 날을 맞게 해주신 당신께 깊은 감사 올립니다. 밖의 저 재잘대는 아이들처럼 뛰고싶고, 성당에 가서 무릎꿇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저 어렸을 적 엉덩이를 깨무는 개미 한마리를 죽였읍니다. 싱싱한 숲이 날 위해 노래부를 때 향기나는 장미꽃을 시샘했읍니다.
천주여! 저는 거짓된 행운의 장난감인가요 하염없이 녹아버린 눈인가요? 허지만 전 버림받았으나 외롭지 않고 슬프긴 하나 울지는 않겠읍니다. 저 거룩한 빛이 저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며칠 전 이모님께선 또 「데레사의 집」에 다녀오셨다. 그 날은 기분이 좋으셨다. 말도 잘 하지 못하던 현주가 「주모경」을 따라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도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다음 번 이모님께서 가실 때엔 나도 꼭 따라 가보련다. 그 날도 이모님께선 현주와 헤어지실 때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현주야,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많이 사 갖고 올께』
신앙에 대해 모자란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하느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이 둔한 머리로 한얽히고 더딘 이야기를 읽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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