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요셉(마태 1장18~25 루가 2장 1~5)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을 전후하여 일어난 일들과 유년시절을 전하는 유년 시대 복음이라고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유년 시대는 4복음서중 루가복음서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마태오복음서는 예수의 탄생을 중심으로 약간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루가의 유년 시대 복음서는 혈통을 강조하여 마리아를 주인물로 썼고 마태오는 예수의 법통을 강조하여 예수의 법적인 아버지요셉을 주인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요셉에 대한 보고는 복음서에서 그리 많은 내용을 전하고 있지 않다. 다만 마태오복음서에서 마리아의 약혼상태의 남편이며 법대로사는 사람이었으며(의인), 마리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였다는 것을 특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약혼녀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드러났을 때 그녀를 세상의 물의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남모르게 헤어지려고 했다는데서 드러난다. 요셉의 고향땅은 베들레헴이었고 마리아와 약혼했을 때는 나자렛에 살고 있었다.(루가1장26~27).
그리고 그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래서 마태오복음서는 예수를 지칭하면서 목수의 아들(15장55)이라고 하였고 마르코복음서는 예수 자신을 목수라고 불렀다(6장3). 하여튼 복음서 특히 마태오복음서는 요셉이 다윗의 후예임을 강조하려는 것이고 이것은 예수가 법적으로 「다윗의 아들」즉 구약시대의 메시아의 호칭을 법통으로 이어받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마태15장23, 22장42). 전설에 따르면 요셉은 나이가 많은 홀아비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지만 그것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과 예수의 형제들이라는 대목을 해결하려는 데서 나온 이야기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그리스도시대의 율법학자들은 결혼연령을 13세에서 19세라는 것을 일반적인 교리로 가르쳤었고 요셉은 마태오복음서대로 법대로 사는 의인이었다는 점으로 보아 마리아와의 약혼은 젊었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가 엘리사벳과 이별하고 나자렛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배가 부른 때였을 것이다.
이것을 본 순진한 요셉은 우선 당황했을 것이다. 이 상황을 중화시키려고 마태오복음서는 그 잉태는『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라고 미리 쓰고 있다. 법대로 사는 올곧은 성격과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간직하였던 마음씨 좋은 요셉은 일을 크게 벌여서 사랑하는 마리아가 곤욕을 보는 역경에 빠뜨리지 않고 조용히 일처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의 차원에서의 해결치고는 최상의 묘안이었다.
요셉이 이런 해결방법을 생각한 것은 과연 참 잘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주님의 천사로부터 그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니 아무 망설임 없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기는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이기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을 붙이라고 일러주었다. 예수는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요셉은 정신을 깨어 주의 천사가 일러 준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법적인 부권의 행사였다.
이 대목에서 「낳을 때까지」라 한 「까지」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토론의 문제가 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측에서는 「낳을 때까지」「낳을 때까지는」으로 해석하여 그 이후에는 동침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가톨릭측에서는 마태오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요셉이 예수의 혈육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며 사실 마태오복음서는 이절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그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의 성령은 창조력을 뜻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는 초생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사도전승이며 이성적인 결론이다.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태어날 아기가 바로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마태오는 이사야예언서를 인용한다. 『동정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 엠마누엘이다』(이사7장14)자연의 견지에서 본 하느님은 우리 위에 계시고 율법의 견지에서는 하느님은 상벌을 내리시는 분이지만 이에 복음의 견지에서는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엠마누엘은 바로 이 뜻이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이다. 요셉은 당황하는 마음에서 자기에게 지워진 막중한 임무에 대한 확신을 가제 되었다.
그는 다윗의 후손이 자랑스러움을 새삼 깨닫고 마리아와 그 태중의 아기를 보호할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를 다윗의 가문호적에 넣어야만 되었다. 그는 나자렛을 떠나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이곳은 다윗의 고을이라 불려지는 곳이고 요셉의 본적지이다. 이곳에서 호적등록을 해야만 했다.
루가는 요셉의 베드레헴 여행 기사를 쓰면서 로마황제 아우구스뚜스의 명으로 시리아의 총독 귀리누스가 내린 호구조사령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아우구스뚜스는 로마 원로원이 준 이름으로 숭배 받을 존엄한 분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는 당시 온 세상의 통치자였다.
아우구스뚜스황제가 온 세계에 내린 호구조사령은 세상의 구세주 예수를 다윗의 아들로 등록하는데 협조한 셈이 되는 하느님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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