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현대세계가 빚어낸 가장 큰 비극중의 하나로 꼽히는 난민 (難民), 일명「보우트 피플」.
우리교회는 나라 잃은 설움위에다 계속되는 나라 잃은 설움위에다 계속되는 기아(畿餓)와 가난으로 인해 인간 최저한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오래전부터「난민사목」이라는 이름하에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월 12일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예수회 한국지구 (지구장ㆍ정한채 신부)가 태국 국경지역의 난민을 대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예수회 난민봉사기구(JRS)」에 제병영ㆍ최홍대 두 수사를 파견, 본격적으로 난민사목에 뛰어들었다.
태국 동부지역「난민 제2지역」에 도착한 두 수사는 얼마 후 본사에 엄청난 그곳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는 호소편지를 보내왔고 5월23일자로「긴 여정을 시작하며」라는 제목 하에 제병영수사가 1회분기사가 담긴 편지를 다시 보내왔다.
이에 본사는 난민사목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큰 나눔에 대한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이 편지들을 정리 격주로 연재하다.
거대한 물체는 굉음을 내며 긴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을 나른다. 서울의 상공을 벗어나는 순간 자유로움과 섭섭함이 교차되며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들이켰다.
1983년 3월 1일 예수회입회. 2년 뒤 허원. 그 후 3년간의 전공과 철학공부. 캄보디아 전쟁난민을 돕기 위해 전혀 생소한 나라 태국으로 떠나는 지금, 나를 이 순간까지 이끌어온「그분의 섭리」가 마치 한편의 파노라마같이 눈앞에 펼쳐진다.
1985년 어느 여름날 나의 영적지도신부인 정일우 신부님이 살고계시는 부천의 아파트를 방문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충격이 나를 가로막았다. 두 신부님이 생활하고 게신 그 공간은 방 2칸과 조그만 부엌을 연결한 상상외로 비좁은 아파트였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정말 즐겁게 생활하고 계신가.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아직까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때부터「참다운 수도자의 길」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이 고민은 바쁜 생활 때문에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2년 뒤 뜻밖의 일을 계기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87년 초 마태오 수사가 태국국경지역 난민촌에서 실습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지구장신부님이 2명의 수사가 그곳에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고 전해 듣는 순간 나는 그곳에 가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한계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신학원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그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당신은 나를 어떤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십니까」라는 간구와 함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게속 되는 공부와소도자로서의 나의 위치ㆍ삶의 방향ㆍ공부를 하는 동안 좁아지는 시야ㆍ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삶ㆍ가난에 대한 나도 모르는 두려움이 뒤범벅되어다가왔다.
「너는 어떤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자신을 위한 수도자 아니면 타인을 위해 삶을 바치는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내 앞에 다가섰고 혼탁해진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운 채 성당 문을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계속되는 방황 속에서 발견한 것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새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인가 잡을 수 없는 수도자의 삶속에서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 다시 한 번 성소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런 나의 고민을 두고 어느 신부님은『그것은 올바른 식별이 아니다』라고 충고를 했다. 이렇게 식별과 선택의 반복이 계속되 가면서 어느새 나는「너는 너를 진정으로 이해해야하고 올바로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라는 해답을 얻어가고 있었다.
상계동 철거민촌을 찾아가 천막 안에서 신부님과 나눈 대화가 무엇보다 큰 힘을 주었다. 『캄보디아 난민촌에 가서 실습기간을 보내며 남을 위한 삶과 가난 속에서의 사람을 배우고 싶다』는 말에 신부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일단 가서 접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지구장 신부님이 허락하신 뒤 나는「예수회 난민봉사기구(JRS)」에 지원서를 썼고 7월에는JRS 아시아태평양 조정자인 마크 레이퍼(Mark Raper) 신부가 직접한국을 방문, 우리의원의를 받아들여 주었다.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됐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자 이 두려움과 모든 갈등을. 중간시험 연기ㆍ계속되는 데모. 사회정의에 대한 외침이 난무하면서 학교는 혼란의 와중에 접어들었고 나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도 전에 철학 마지막 학기를 맞아 태국으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어떤 순간에는 약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갈등과 두려움에 빠졌다가 다시 강한 의욕이 속구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오직 그들과 함께하고자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며 나눔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알면 된다」것이 그분의 참뜻이라는 생각이 또렷이 떠올라 왔다.
철학종합시험 (예수회는 철학공부를 마친 뒤 예수회 자체 내에서 철학 종합시험을 본다)을 마치고 한 달 가량의 출국준비를 한 뒤 금년 2월 12일 예수회형제들과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을 나섰다.
내가 기억의 행로를 더듬는 동안 어느새 비행기는 창문아래 한반도를 까마득히 멀리하며 창공 한가운데로 떠올랐다. 기아와 가난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난민들을 도울 길을 과연 무엇일까. 그분의 손이 다시 한 번 나를 이끌어주시리라 기대하며 미소를 떠올려본다. (계속)
※주소=Gabriel ByongYoung Je. SJ PO BOX2 TARPAYA PRACHNBURI 23180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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