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도착에 앞서 순례자들은「소돔」에서부터 시작, 「맛사다」「엔게디」「꿈란」그리고「베타니아」까지 정신없는 순례일정을 거쳐야했다. 첫 밤을 보낸 욧바다 기브츠에서 약 2시간 반 거리에서 만나는「소돔」은 이미 창세기(18장18절~19장29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저주받은 도시.
『주여 노여워 마십시요. 단 한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열사람 밖에 안 되어도 되겠습니까』야훼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사람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다』그러나 아브라함이 간청한 단 10명의 의인이 없어「소돔」은「야훼께서 손수 퍼부으신 유활 불에 의해」불에 태워지게 된다.
극치에 달했던 성 타락과 성범죄의 대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소돔」, 그 현장은 참으로 많은 묵상을 요구했다. 소돔에서 우리의 연민을 불러일으킨 것은 롯의 아내라 일컬어지는「소돔기둥」.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에 태워지는 소돔을 보고 말았던 롯의 아내는 누런 빛깔의 소금산중턱에 외로운 모습으로 순례자를 맞아주었다.
「맛사다」. 사해를 끼고 모래사막을 달리다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바위산「맛사다」는 수세기동안 이스라엘 정신을 무장시켜온 정신교육장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는듯했다.
높이 4백 50미터, 둘레가 1ㆍ5킬로미터에 이르는「맛사다」는 BC40년경 헤로데왕이 왕권을 보호하기위해 구축한 천연의 요새로 AD66년경 갈릴리지역에서 시작된 유대 독립운동의 최후보루이기도하다.
로마군대에 끝까지 대항하다 끝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 영원한 자유를 구하려했던 맛사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험준한 맛사다를「케이블카」로 오르면서 실감케 된다.
적에게 잡혀 죽거나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길을 찾았던 맛사다 사람들, 그러나 자살만은 피하기 위해 제비뽑기라는 지혜를 짜냈던 이들의 이야기보다 더 확실하게 이스라엘, 그 정신을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으리라.
관광객사이로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맛사다를 줄지어 순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서 선민사상이 바탕에 깔린 완고한 역사의식, 철저한신앙심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입성은 순례자들을 긴장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그 삶의 발자취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예루살렘은 빡빡한 일정에 이끌려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순례자들에게 놀라운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구약의 성왕 (聖王)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해진 예수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과는 달리 무수한 침략과 전쟁으로 평화를 지킬 수 없었던 숙명의 도시. 긴장과 분쟁이 여전한 불씨로 존재하는 성도 예수살렘의 평화는 너무도 먼 곳에서만 맴돌고 있는 듯 그 숙명의 역사가 순례자들의 마음을 한없이ㅣ 우울하게 만들었다.
「올리브동산」을 깃 점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날은 날씨마저 화창했다.
따가운 햇살 속에서도 간간히 불어오는 한줄기바람을 맞으며 오른 올리브동산에는「예수 승천성당」「주의 기도 성당」이 소박한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았다.
키드론 계곡을 가로지르며 오른 올리브동산위의「주의 기도 성당」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쳐주신 곳이자 최후재난 (마태 24장)에 대해 경고하신 장소로도 유명하다.
세계 각국어로 된 기도문가운데 유난히 돋보이는 우리말로 기록된 주의 기도문 앞에서 순례자들은『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르신 그리스도의 당부를 다시금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돔 모양의「예수승천성당」은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남긴「발자국」이 찍혀져있다는 돌판이「전설처럼 남아」순례자들의「특별한」눈길을 끌기도 했다.
수난전날 극심한 고통과 번민에 쌓인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신 겟세마니 동산, 피 땀 흘려 간절히 기도하신 그 장소에는 프란치스꼬 수도회가 봉헌한 기념성당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고뇌(눈물)의 성당」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키드론 골짜기, 그 속에는「실로암 연못」「베드로통곡성당」그리고「성모임종성당」등 유서 깊은 현장들이 산재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최후만찬 장소로 일컬어지는 2층 다락방, 다윗의 무덤 위에 자리한 이곳은 회교가 지배하던 4백년간 폐쇄 되어 있었으나 6일 전쟁 후 비로소 개방돼「성신강림대축일」과「성 목요일」등 1년에 2회씩 공식예절이 허용된다는 설명이었다.
천사가 내려와 휘저을 때 제일먼저 들어가면 병이 치유된다는「벳사이다 호수」를 지나면 바로「안또니오성당」.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편태를 맞으신「사형선고 (편태)성당」이다.
1처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던 십자가의 길을 빈손으로 따라 오르는 순례자의 마음은 송구스럽기만 하다.
좁다란 골목길 양옆으로 가득 들어찬 아랍 상인들의 상점들, 손님을 부르는 시끄러운 소리들로 순례자의 기도는 여러 갈래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 조롱과 멸시 속에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의 고통, 그 큰 뜻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고픈 순례자의「엄청난」꿈은 꿈으로만 남아있을 수밖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