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돌을 맞은 가톨릭 신문은 5대주 6대양 한국 신자들이 살고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보내진다. 이국타향에서 국내교회의 소식을 접하는 구독자들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어 한자 한자 빼놓지 않고 읽는다고 전해온다. 차제에 60돌을 맞은 가톨릭 신문과 함께 그 기쁨을 같이 하고자 해외구독자들이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註>
■ 고향 까마귀 보는듯 每週 신문받는 날은 생일 기분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말이 있읍니다. 이 말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체험한 것은 1969년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을 때 였읍니다.
사병들 중 어떤 이는 일 년동안 1백 50여통의 편지를 받았노라 1백여통의 편지를 받았노라 좋아들하는 모습을 가끔씩 볼 수가 있었읍니다. 하기야 타국에서, 더구나 전쟁터에서 받은 편지이기에 그 기쁨이 오죽이나 했겠읍니까?
남편을 몹시도 보고파하면서 보낸 사연이요, 연인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보낸 사연들이기에 뜨거운 사랑이 담기고 무사와 안녕의 기도를 담고 그리움의 극진한 정성을 담아 보낸 예쁘고 예쁜 마음이었을테니까요. 이러하지도 저러하지도 못한 주제에 약간 모양은 달라도 매주 한 번씩 소식을 받아보는 영광과 기쁨이 저에게도 있었읍니다.
저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느꼈던 그 고마움의 순간들을 늘 기억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조유리안나 자매가 보내오는 가톨릭 시보였읍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 자매는 대한방식 공장에서 3번 교대근무를 하는 그리 넉넉하지도 않은 형편에서 빠짐없이 신문을 보내 왔읍니다.
매주 한번 신문을 받는 그날은 마치 고향에서 생일을 맞는 그런 모습이었읍니다. 열대의 찌는듯한 무더위를 잊으면서, 총포탄의 사나운 울부짖은 속에서도 아늑함을 느끼면서….
지금은 이안젤리까 자매가 보내오는 가톨릭신문을 받아보고 있읍니다. 그 자매의 가정 또한 시골 경제사정으로도 어느 가정보다도 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기에 신문을 받는 날은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게 됩니다. 또한 많은 말보다 소리없이 한 가지를 행하는 일이 훨씬 더 많은 힘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읍니다.
누구인가의 마음에 곱게 자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요사이처럼 복잡하게 돌아가는 속성시대에 망각의 급류 속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들도 또 일들도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겠지만 마치 고향 까마귀를 보는 것처럼 예쁜 우표가 있는 우편물을 받는 것도 기쁘고 기쁜 일중의 하나임은 틀림이 없읍니다. 그것은 보내오는 뜨거운 마음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성이 담기고 기도가 담겨있는 것이라면 말 한마디인들 어떠하며 돌멩이 하나인들 왜 크나큰 가치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의미가 없겠읍니까.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인간미를 체험하고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있는 고마움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읍니다.
가톨릭신문이 걸어온 60년의 발자국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또 가톨릭신문이 걸어갈 앞길에 한아름 아름다운 꽃다발을,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영국에서>
■ 신문의 「정직성」인정해, 해외 구독자들에 관심을
찬미예수!
가톨릭신문 창간 60돌을 맞이하여 독자로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세계교회에서도 이미 수준높은 평가(세계 가톨릭신문 비교평가, 구제 종교 문화협회, 루르드 1971, 1981: 매주「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가 신속 정확하게 전달됨에 교황님 친히 축전을 주심, 1985)를 받으며 원로의 품위와 슬기, 지식이 시작 연륜에 비해 충만한 신뢰와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렇게 영광스런 때를 맞이하여 외국의 구독자로서 귀 신문의 내용에 대한 의견과 소감을 적어볼까 합니다.
가톨릭 신문 구독에 있어서 다수의 구독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소수개인들의 구독원의의 강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톨릭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의무적인 구독의 성격을 띤다고 하겠읍니다. 그리고 가톨릭신문이 외국에서 생활하는 신자에게서조차 매우 희귀하게 구독된다는 사실입니다. 각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구독하지 않는다면 특히 외국생활에서 신앙성숙에 큰 손실이라고 봅니다.
가톨릭신문의 내용은 이미 모든 이가 그「정직성」을 인정하고 있읍니다. 흔히 이곳 외국에서 말하기를 『다른 신문은 못 믿어도 가톨릭신문만은 믿는다』라고 합니다.
현대의 신속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상황들이 보도될 때, 때로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정확한 상황을 알 수가 있읍니다. 특히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의 글, 사설, 방주의 창, 데스크칼럼, 걸림돌 등등은 상황판단의 척도가 되어줍니다.
이 기회에 귀사에 건의하고 싶은 것은 외국의 구독자들을 적극적으로 연구 모색하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분들에게도 구독원의를 불러 일으키도록 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 교포신자 고정칼럼 절실, 영신적 도움주는 글 연재도
고국에 대한 소식에 굶주려있는 외국생활에서 유일한 신앙의 길잡이자 벗의 역할을 꾸준히 해온 가톨릭 신문의 창간 60돌에 즈음하여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 인사와 더불어 그 동안 독자로서 느꼈던 점들과 몇 가지 바램들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가톨릭신문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각 교구 주교님들의 사목교서는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있지만 대부분의 이곳 교우들에게 자기 출신 교구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 의식을 향상시키고 돈독히 하는데 일익을 해 왔읍니다. 그리고 이곳의 언어 사정때문에 접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교황님의 가르침을 때맞추어 우리말로 쉽게 읽어 볼 수 있기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읍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 일어난 갖가지 일들뿐만 아니라, 특히 왜곡되어 전해지기 일쑤인 고국의 정치ㆍ사회에 관한 기사들을 가톨릭신문을 통해서만은 마음놓고 받아들일 수 있었음을 자부해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유일한 주간 신문인 가톨릭신문이 선교 3세기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교회의 발전에 발맞추어 현재 본지의 지면을 좀 더 증면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어느 때보다 더 향상되어가는 평신도의 의식수준에 맞추어 신앙에 관한 기사와, 아직까지 한국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영신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교부들의 글 또는 성인들의 글들을 매주 조금씩 연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외국에 사는 교포신자나 유학생들에 대한 고정 칼럼란을 두어 외국생활에서의 신앙생활의 문제와 소식들을 전하여 국내교우들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과 아울러 어느 때보다 더 힘든 국내사정에 대하여 매스미디어의 사명을 소신껏 다해주시길 성원하며 주님의 크신 은총이 귀사의 발전에 있으시길 바랍니다.
<프랑스에서>
■ 聖水같은 역할해 줘, 교회가르침 보도 대할 때 활기 얻어
제가 리비아로 오게된 것은 고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도중에 갑자기 해외 출국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읍니다.
생각도 못했던 것이 갑자기 연락이 오고보니 어떻게 해야될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부모 형제를 떠나 모든 것이 낯설고, 기후와 풍토까지 다른 나라에서 고생을 하면서 꼭 해외에 나가야 하나 하고 몇 번 망설였지만, 아직 총각이고 하니 부담감 없이 다녀와야겠다고 결단을 내렸읍니다.
김포공항을 떠나 트리폴리 공항에 착륙하여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훅 끼쳐오는 열기와 함께 까마득히 솟아오른 야자 대추나무들이 이국적인 풍치로 나를 맞이하더군요.
이곳 리비아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동절기에 속하여 우리 나라의 늦가을 정도의 기온을 보이며, 4월부터 9월까지는 하절기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이곳 리비아는 건조하고 무척 더우며 먼지 바람인「할라스」에 고생을 많이 하지요. 산소마저 부족하여 현지인의 회갑은 마흔살이라 할 만큼 살기가 힘든 곳입니다.
리비아 정부는 기독교는 인정해 주지 않으나 가톨릭은 인정해 줍니다만, 교회는 전체 세군데 밖에 되지 않으며, 토목 공사장인 이곳은 신자가 그리 많지는 않으나 조그마한 공소를 한간 마련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성된 마음으로 기도를 한곳으로 모아 주님을 증거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그런지 천주교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높은 편이며 대체로 긍정적인 평판을 얻고 있읍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오거나 환자가 있을 경우 솔선수범하여 연도와 기도를 드려주기도 하지요.
이곳에서의 가톨릭신문은 우리 마음을 정화해 주는 성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읍니다. 공소예절과 레지오 활동에 긴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예비자 교리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읍니다. 교회의 움직임을 훤하게 알 수 있어 좋으며, 교황님과 신부님들의 가르침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는 교우에 대한 보도를 대할 때마다, 힘이 솟기도 하고 저희들이 생활하는데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미사를 봉헌하려면 택시를 타고 두 시간 거리인 베가지 성당에 나가는데, 저번 성탄 때는 로마에 유학오신 신부님께서 유익한 말씀도 해 주시고 예비자들에게 영세도 주셨지요. 미사 때마다 고국에 계신 신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읍니다. 항상 안녕히 계십시오. <리비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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