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7월 4일 토요일
동굴에서 토요마시를 재개. 서정수신부가 회의 지지를 요청하는 일로 왔다.
나는 감목대리에서 보내는 지시를 들려서 보냈다.
7월 14일 화요일
야고버를 위해 나의 소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그의 많은 가족들이 참석하고 영성체를 했다. 그는 바로 25년 전에 복사로 들어왔는데, 그 이래로 그의 가족을 위해 한마디 기념되는 말과 함께 틀에 잘 넣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최덕홍 신부가 도착했고. 6월 29일자 모든 인사이동이 이행되었다.
7월 25일 토요일
종신허원을 위한 한국수녀들의 교법상의 시험이 있었는데, 나는 제 날짜보다 5일 먼저 8월 25일에 허원을 행할 수 있도록 특전을 요청했다. 소품자 김루수는 적어도 외적인 비행 때문에 신학교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원산에 소개해볼까 한다.
8월 15일 토요일
대성당에서 강론을 하고 미사를 드렸지만 성체강복은 없었다. 종신허원을 위한 특전이 허락됐다는 교황사절의 편지를 받았다.
8월 20일 목요일
나는 신사참배에 관한 가톨릭의 입장에 관한 서한과 함께 일본어로 된 1백 36개의 소책자와 편지를 4개 도(道)에 보냈다.
회람 제118호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8월 23일 일요일
방학동안 경솔한 행동을 한 4품자 루수를 원산 신학교에서 받아들였다.
8월 25일 화요일
대구 수련원의 첫 서원 수녀 5명이 아침에 종신허원을 했다.
9월 13일 일요일
부산진성당을 강복하고 견진성사를 주고 저녁에는 섬에서 지냈다.
9월 15일 화요일
신학교의 교수들이 그들의 반 근대주의 선서를 갱신하러 왔다. 저녁에 신학교가 개학했다.
10월12일 월요일
나는 하카라까지의 기차표를 갖고 저녁 8시 45분 기차를 탔다.
10월 18일 일요일
피정이 계속되었을지라도 교리강의는 변화가 없었고 8시에는 신학교성당에서 부제와 차부제가 복사하는 창미사가 있었다. 나는 주교좌에 참석했다.
10월 20일 화요일
만약 내가 4인용 침대칸에서 보냈다면 배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좋았을 하룻밤을 지내고 6시 30분에 부산에 내려서 첫 급행열차를 타고 9시 20분에는 주교관에 도착했다.
10월 26일 월요일
9시에 송대를 떠나 11시 45분에 도착했다.(왕복40월이 들었다) 김양홍 신부가 현재 공산주의자들과 타협하고 있는 고군삼 (高君三)신부의 행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설명하러 와 있었다.
10월 27일 화요일
고신부의 재치권을 제한하는 교서를 준비했다. 그러나 현재 경찰이 조사하고 있는 사건의 형세를 감목대리신부가 내가 알려줄 때까지 그 교서를 발송하지 않았다.
11월 4일 수요일
57명의 견진성사. 유홍모 신부를 데리고 10시 기장에 도착하기위해 8시 30분에 출발했다. 43명의 견진성사. 기장에 유 신부는 남겨두고 2시30분분에 함양으로 출발, 1시간 15분 걸려 36km를 갔다.
11월 5일 목요일
어제 저녁 김동욱 신부와 함께 온 수분리의 8명의 신자를 포함하여 1백 8명에게 견진성사를 주었다. 2시 30분에 출발, 진주읍에 도착해 저녁에 1차 견진성사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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