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로서 성모성년(聖年)이 끝나게 된다. 작년 성모성년을 선포하면서 교황께서는 신자들에게 전대사(全大赦)를 베푼다고 하셨다. 우리 신자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전대사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대사의 참뜻을 모르는 신자들이 많이 있는 것도 같다. 이제 곧 성년이 끝나므로 전대사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주간을 우리는 더욱 열심히 생활해야하겠다. 그리고 전대사의 깊은 뜻을 바라 알아듣도록 해야 하겠다.
대사는 보속의 전부를 없애주는 전대사와 보소의 일부를 없애주는 한대사(限大赦)로 구분된다. 한대사는 예를 들어「40일대사」라면 초대교회에서 범죄자에게 공적으로 정해준 보속 기간이었는데 40일 한대사를 받으면 이 기간만큼의 보속을 감면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대사라면 일반적으로 전대사를 의미하고 한대사는 거의 통용되지 않고 있는 추세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대사헌장」을 발표, 대사의 참된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셨다.
즉 죄의 잘못자체는 고백성사로써 이미 용서되었으나 죄 때문에 하느님 앞에 받을 시한적벌(時限的罰) 또는 연옥의 벌을 면하는 것이 바로 대사라 했다. 신자는 영적으로 잘 준비해서 일정한 보속의 조건을 채우면 교회의 도움으로 이를 얻게 된다.
교회는 구원의 봉사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聖人)들의 보속으로 얻은 보화를 나누어주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학적 벌을 없앤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교회가 나누어주는 보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시학적 죄의 벌
우리교리책에는 영원한 벌(지옥)과 시한적 벌(연옥)을 구별하고 있다. 영원한 벌이란 누가중죄를 범했을 때 하느님을 거스리고 하느님과 분리되고자하는 스스로의 결정이 그 속에 포함되어있고 죽을 때까지 취소하지 않고 그것을 원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로 얻는 영원한 지옥의 벌을 의미한다.
이 영원한 벌에는 대사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각개의 죄는 항상 직접적이고 공개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개인적 친교관계를 경시하거나 등한시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각개의 죄에는 시한적 벌이 따르게 된다. 이 벌은 재판에서 징역이나 벌금형으로 처벌되는 그런 종류의 벌이 아니다. 각개의 죄는 비록 소죄라 할지라도 그 자체 안에 벌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각개의 죄스런 잘못된 결정은 그 사람 자신 안에 그리고 그 주위 안에, 자기와 세상의 관계 안에 흔적과 결과를 남겨놓게 되며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계속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죄의 이런 결과나 벌은 죄가 용서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은「트리덴띠노」공의회에서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시한적 벌을 사면해주는 것을 단순한 암네스티로 알아들어도 안 된다. 비록 죄를 용서 받았고, 하느님과의 친교관계가 재생되었다 해도 이벌은 죄인이 애써서 보속해야할 일이다. 이 벌의 사변은 이런 노력으로써만 얻을 수 있고 교회는 각신자의 이 같은 노력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결국 속죄를 다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또 죽어서 죄의 결과를 짊어지고 거룩한 하느님을 만나야할 때 이 만남은 그에게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는 죽은 후의 정화 즉 연옥이라 부른다.
교회의 보화를 통해서
그러므로 대사는 앞서 설명한 시한적 벌에 관한 것이다. 신자가 이 시한적 벌을 죄의 결과로써 짊어지고 가야한다면 대사는 죄인이 속죄하는데 교회가 도와주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교회의 전통은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호를 말한다. 교회는 이 보화를 구원의 봉사자로서 권위 있게 나누어주고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 교황 끌레멘스 6세도 말씀하셨지만(1343년) 바오로 6세 교황도 교회의 보화에 관해서 설명하시면서 오해를 하지 말도록 당부하셨다.
즉 교회의 보화는 교회가 수세기 도안 모아둔 물질적 부(富)들로 알아들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교회의 보화의 참뜻은 온 인류가 죄에서 해방되고 성부와 일치하도록 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행한 속죄행위와 공로들이 가지고 있는 끝없고 무한한 가치들이 바로 그 보화인 것이다. 교회의 보화는 바로 구세주 그리스도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 모든 속죄와 구원의 공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살았고 우리를 위해 죽었으며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분으로서 항상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예, 헤브7, 25). 그러면 성인들의 공로는 무엇인가? 우선 성인들도 공로를 그리스도와 같은 지위로 봐서는 안 된다. 성인들도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성부하느님께 갔으며 성부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그분에게 참여할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신자들은 순수한 친교를 나누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미 세상을 떠난 그 성인들이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해서「보화」가 되는 것이다.
죄의 벌을 속죄하기 위한 도움
인류구원의 봉사자로서의 교회는 이렇듯 구원의 보화를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속죄의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죄인이 하느님께로 회개하는 과정에 교회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속죄하며 회개하는 죄인에게 여러 모양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박해를 당하는 신자들은 죄인들을 위해 보속함으로써 자기의 속죄기간을 단축 하던가 또는 벌을 사면 받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중세초기에는 보속의 짐을 가볍게 해 주던가, 다른 것으로 대체 하든가 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교회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죄인이 하느님 앞에 처벌되는 과정에서 그 벌을 탕감해주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대사헌장이 말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신자들이 죄의 벌을 보속하는 노력에 하나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즉 교회는 신자가 이 벌을 더 가볍게 짊어지고 갈 수 있도록 또 이를 견디어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실한 회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대사는 그래서 구원의 종으로서의 교회가 취하는 조처이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된 몸이다. 교회가 이러한 뜻으로 자기 지체의 하나를 위해 하느님께 간청하면 하느님은 이 간청을 확실히 들어 주실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죄 자체는 이미 용서되었으나 그 죄의 결과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대사는 교회전체가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교회의 공식 확약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전대사가 구원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해도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처럼 신자들이 이를 올바르게 사용해야하며 자유로운 결정에 맡겨야할 것이다. 교회는 각 신자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거룩하고 올바른 자유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러한 정화와 성화의 방법을 상용하도록 자유롭게 맡겨두는 것이다. 신자들에게는 본질적으로 성실한 회개와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대사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대사는 교황성하나 교구장주교가 정하는 바에 따라 연중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매 25년마다 선포되는 정규적인 성년(聖年)이나 이번처럼 교황께서 특별히 선포하신 성모성년에 고백성사와 영성체 그리고 성지를 순례하며 기도하고 공로를 쌓음으로써 전대사를 받는 것은 보다 특별한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