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로서 전북 부안에 처음 부임한 후부터 16년간 전라도에서 생활한 나는 42년 경북 문경으로 옮겼다. 20여년을 일제하에서 사목한 셈이다. 일인들의 횡포를 어찌 다 얘기하랴. 하지만 그들도 신부들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하야사까 주교가 교구장으로 계실 때는사목하기가 조금 쉬웠다.
그 당시 조그마한 면단위 지역을 사목할 때는-주로 공소순시였다-그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주재소에 가서 허락을 맡아야 했다. 허락을 맡았다해도 형사가 신부 뒤를 졸졸 따라다녀 몹시 귀찮았다.
공소나 본당에까지 따라와서는 무얼하나 보고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서 참관하게 했더니 가는 곳마다 같은 내용이어서인지 나중에는 먼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미사나 교리내용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작은 면단위 지역을 다닐 때 일인들에게 하도 곤욕을 치뤄 그 다음부터는 촌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적어도 군수가 있는 곳이라야 일하기가 쉬웠다.
군수와 친해놓으면 수월하게 일이 풀렸으니. 전교상 그들과 접촉을 안할 수도 없었고. 이들과 교제를 하다보니 자연히 일어도 늘고 술도 늘게 되었다. 그 당시군(郡) 이상의 이상의 조금 큰 지역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그 지방의 유지들이 모이는 날이 있었다. 관청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군수ㆍ경찰서장ㆍ면장ㆍ목사ㆍ신부 등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는 술을 마시고 어떤 얘기를 해도 비밀이 지켜졌다. 이런 모임은 그들의 얕은 꾀이기도했다. 유지들에게 잘 보여야 일하기가 수월했으니까.
문경에 있을 때라고 기억된다. 이날도 유지들이 모여 술을 같이 하였는데 경찰서장이『신부상! 전교하는데 불편한 것이 없는가』하고 물었다. 주재소마다 가서 보고하는 것이 힘들었던 때라 나는 『대일본제국 국민으로서 여기저기 조사받으니 죽겠다』고 얘기하니 서장은 『아무 걱정하지 마라. 잘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이로써 경찰에 불려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이것은 문경에 오고나서 이야기고 전라도에 있을 때는 어려운 점이 참 많았다. 진안에 있을 때였다.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하루 전인 14일.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형사인 마쓰야마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래서 같이 얘기를 나누던 중 마쓰야마가 문제를 하나 내겠다고 하더니『그리스도와 천황과의 관계가 어떠냐』고 물었다. 별 생각없이 나는 『국민을 위해서는 천황을 숭배해야 하고 교인으로서는 그리스도를 숭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얘기를 더하다가 헤어졌다. 성모승천대축일을 지내고 그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중 빨간 호출장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경찰서에 가보니 미쓰다라는 다른 형사가 같은 문제를 내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똑같이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경찰국장이 와서 일본말 잘하는 신부를 데려오라고 했다. 일본말을 하기는 했으나 능숙하게 하지 못했던 내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현재는 전주교구 은퇴신부인 오기순 신부를 데려왔다. 오 신부가 조리있게 헌법에 나와 있는 구절을 인용, 『천황폐하는 신성해서 아무하고도 비교못한다』고 얘기하자 한참 있다가 『신부상, 바쁘신데 가보시오』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학술강습소 운영문제로 경찰서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전교 목적으로 미취학 아동대상 학술강습소를 시작했던 것이 그들 눈에는 반일사상을 고취시키는 곳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당시 8살이 넘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으므로 형편상 취학기를 놓친 아이들을 따로 모아 글을 가르쳤던 것이다. 사실이 강습소는 효과가 있어 2백50명 정도 규모로 운영되었고 전교상 유리한 점도 많았다.
이러한 학술강습소는 나외에도 그 당시 신부들이자 관할지역에 여건만 되면시설을 마련했었다. 그래서 석종관, 최민순 신부 등도 함께 불려갔다. 이때 우리는 전교하는데 주의하라는 말을 듣고 훈방되었으나 최민순 신부는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러가지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했던 일제시대였다. 한국인은 논이든 밭이든 20마지기 이상 소유하지 못했고 양식을 공출해가고, 서민들은 만주서 기름짜고 남은 콩을 불려먹고 도토리묵 등을 해먹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암울했던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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