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를 유유히 거니는 돈공(豚公)과 계양(鷄孃)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인도를 방문했을 때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는 소위 성우(聖牛, Holy Cow)라 불리 우는 백색의 우공(牛公)들을 보고 퍽이나 당황해 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소가 아닌 돼지와 닭이 한데 어울려 사람들과 함께 기거(?)를 하는 것인지 노니는 것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광경을 바라다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오가고 있었다. 이 모습은 시각적인 경악감에서 그치지 않고 곧 후각으로 연결되어 악취를 풍기면서 섭씨45도 전후의 무더운 열기와 뒤범벅이 되어버린다. 으례히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겠지 하는 독자가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시골이 아닌 바로 캄푸치아의 수도 프놈펜시의 일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거리의 광경이라는 사실에서 충격적으로 와 닿는 것이다.
물론 프놈펜을 벗어난 외곽지대나 시골 마을의 주거환경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마치 우리의 원두막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주거지에 가축들과 어울려 사는 듯도 싶을 정도로 위생관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가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다 초근목피 수준을 못 벗어난 끼니 때움과 그냥 걸쳤다는 표현이 옳을 듯싶은 초라한 옷가지가 바로 그들의 의식주인 것이다. 이 같은 그들의 생활모습이 어떻게 보면 원시에 가까울지라도 도시의 밀집된 옥상생활에 비하면 오히려 자연에 가까운 여유 있는 생활모습인지도 모른다.
생활수준이 이 정도이니 교육의 현장은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문자 그대로 책도 없고 노트도 없고 연필도 없는 빈주먹 수업현장을 목격할 때의 마음아픔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런지. 노는 시간의 운동장 광경은 우리를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흔하디흔한 뜀틀, 미끄럼틀, 철봉은 커녕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공터이다. 슬리퍼 같은 신발을 벗어 맞추기 놀음을 하는 것이 고작이 아니던가. 6ㆍ25직후의 폐허가 된 우리네 국민학교 운동장 모습에나 견주어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그 당시 연필 등의 구호물자를 배급받을 수 있었지 않는가. 서방(西方)세계로부터 지난 9년간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허덕이는 그들과 수평적인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온당치 못할 것이다.
유아원과 고아원도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 또 다른 현실상이었다. 폴포트 광기의 후유증과 함께 남녀의 정상적인 비율이 깨지면서 일부다처가 비공식적으로 묵인되는가 하면 성도덕의 문란에 따르는 기아와 고아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제대로 뒷바라지 할 재정이 없다는데에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고아원의 경우 6세에서 19세까지의 고아를 3백 46명 정도 수용하고 있었다. 취재의 일환으로 점심때의 취사광경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점심메뉴를 대하게 된 우리 일행은 그저 아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밥과 국물 두 가지 뿐이다. 양재기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면 그만인 한끼식사! 3백 46명분의 한끼 비용이 고작 우리 돈으로 2천 2백원 가량이란다. 반찬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스럽다고나 할까. 그나마도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아 걱정이라는 여성 원장의 차분한 호소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 울린다.
하기야 캄푸치아 고급공무원의 경우 한 달 봉급이 4천 8백원 수준이고 중간급 공무원이 2천 4백원, 운전기사가 1천 2백원 정도라고 하니 비록 싼값으로 쌀 배급을 받는다 할지라도 남을 위해 잠시라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겠는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본다 치더라도 폴포트치하에서 철저히 파괴된 건물이나 교량 및 차량, 공장시설 등을 복구하기 위한 기술 인력과 이들을 뒷받침할 재원이 전무한 상태이니 정부인들 속수무책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 차량이 부족해서 각료급도 몇 명이 함께 출퇴근을 해야 할 정도이니 일반 교통수단에 할당될 여분이 어디 있겠는가. 역시 이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으로 영업용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자전거한대만 있으면 끼니는 굶지 않게 마련이다. 거리의 사진사도 괜찮은 직업이란다. 그만치 카메라가 귀한물품으로 역시 카메라 하나만 갖고 있으면 인기 직업사가 되는 것이다.
신문도 없고 잡지도 없고 9시만 되면 매일같이 찾아오는 통금시간과 함께 적막의 고요함으로 빠져드는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전기도 수시로 단전이 된다. 혹 냉장고나 에어컨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오늘의 프놈펜인 것이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은 외국인 전용의 국영 고급호텔인데도 방에 전화도 없고 TV도 없다. 하기야 또 TV가 있은들 무슨 기여를 하겠는가. 4명의 PD가 고작인 소꿉장난식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는 1일 2시간 주5일 방영에서 무얼 기대하겠는가. 하기야 신문 안보고 TV안보고 전화 받을 일 없으니 속 편하고 마음도 편해지더라는 역설 아닌 역설이 정설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곳에도 창녀가 있고 디스코장이 있고 외제상품전매장이 있다니 역시 사람 사는 곳에는 으례히 특권층이 있고 호의호식을 떠날 수 없는 특수층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물론 주 고객층은 원주민보다 상주외국인이나 주둔군일 것임이 틀림없다고 본다. 다만 매일 그림의 떡만을 쳐다보아야 하는 다수의 굶주린 눈망울을 누군가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에 잠겨보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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