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당시 제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목격하고 체험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겪었던 그리스도의 일생, 그의 복음, 구원의 소식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일에 앞장서기 시작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예수의 제자들의 전도여행은(사도2, 2~13)팔레스티나 일대를 비롯, 멀리 소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연결됐고 사도들의 이 같은 활동으로 그리스도교는 놀라운 속도로 확산돼 세계교회로서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그리스는 사도들의 2차ㆍ3차 전도여행의 중심지. 「필립비」「데살로니까」등 다시 마케도니아 지역과「아테네」「고린토」에서 바오로 사도는 실라ㆍ디모테오 등 그의 동반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 교의의 융성을 이루게 된다.
아쉬움 속에서 이스라엘을 뒤로하고 그리스 땅을 밟았다. 오전 11시 텔아비브를 떠난 비행기는 2시간만인 오후 1시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도착했다. 마침 우리가 탄 비행기에는 에티오피아 순례단 3백여명이 동승,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산더미」같은 그들의 여행 짐은 결국 모든 여행자들의 출국수속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공항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곧바로 고린토행.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7㎞, 1시간 30분 거리의 고린토를 서기 52년 바오로 사도가 1년 반을 머물면서 전교에 힘썼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중 가장 영화를 누렸던 고린토는 아테네보다도 먼저 부강했으며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인구 30만을 자랑하는 도시였다.
로마 식민지였던 이곳은 로마문명과 그리스 문화가 공존했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역사의 흐름을 읽게 해 주고 있다. 『회당장 그리스보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고 그밖에도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많은 고린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어느 날 밤 신비로운 영상가운데서 주께서 바오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겁내지 말아라. 중단하지 말고 전도를 계속하여라. 내가 너와같이 있을 터이니 네게 손을 대어 해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이 있다』바오로는 1년 6개월동안 거기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로마의 식민지로 AD2세기에 크게 융성했던 고린토는 3세기부터 약탈자들의 침략으로 고난을 당했으며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아홉 번이나 점령당하면서 파괴됐고 1858년, 1928년 두 번의 대지진으로 철저히 파괴당했다. 고린토 박물관의 유물들과 폐허위에 남아있는 여러 잔존물들은 번영했던 당시 고린토의 영화를 읽게 해주고 있다.
그리스인으로 바오로 사도의 열심한 추종자였던 디모테오와 실라를 데리고 그리스전역을 전교지로 삼았던 바오로 사도는 이 고린토에 정식으로 교회를 세웠고 이들의 2차 전도여행은 세계전교의 발판을 마련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
사도들의 전교로 크리스찬 공동체가 크게 활성화되기 시작한 고린토였지만 비대해진만큼 고린토교회는 교회공동체 내부의 분열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를 전해들은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교회에 보내는 첫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일치할 것을 강력히 호소하게 된다.
『형제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갈라지지 말고 서로 일치하십시요.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과 뜻을 같이하여 굳게 단합하십시요. 내 형제여러분, 나는 클로에의 집안사람들한테 들어서 여러분이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마다「나는 바오로파다」「나는 아폴로파다」「나는베드로파다」「나는 그리스도파다」하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Ⅰ고린토1, 10~12)발굴과 개발로 드러난 고린토의 흔적들을 돌아보면서 순례자들은 그 유명한 고린토전서13장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랑은 참아줍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사랑의장」으로 크리스찬은 물론 비신자 사이에서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고린토전서 13장을 묵상하면서 이방인의사도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보다 널리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바오로 사도의 뜨거운 열정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고린토에서 다시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목은 이미 석양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간에 쫓겨 무심히 지나쳤던 고린토 운하에서 일행은 숨가쁜 일정을 잠시 멈추고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고린토 운하를 감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2천 7백년 전 로마시대에 건설이 시도되기도 했던 고린토 운하는 1881년에 착공, 12년만인 1893년 완공을 본 것으로 펠로폰네소스반도와 아테네를 연결해주고 있다. 프랑스기술진이 완성했다는 고린토 운하는 운하 양쪽벽면을 이루고 있는 석회석 암벽이 당시 공사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바오로 사도의 2차ㆍ3차 전도 여행지인 그리스는「고린토」외에 여러 지역에 걸쳐 사도들의 발자취가 서려있다는 점에서 순례자들의 마음을 들뜨게했다. 「아테네」「필립비」「데살로니까」등등… 신약성서를 통해 이미 그 지명에 익숙해있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는 이미 낯선 이국이 아닌듯했다.
그중에서도 현대 그리스의수도인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어머니이자 최대의 명성을 자랑했던 고대 도시 중 하나. 역사적인 유물과 무수한 문화유산 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시대에서부터 중요한 종교중심지로서 주변도시와 국가들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아테네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가장 먼저 붙잡는 아크로폴리스, 높다란 언덕위에 자리한 파르테논 신전은 BC5세기 도리아식의 고전적인 건축물로 아테네의 상징적 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 신전 외에 그리스연극의 탄생지 디오니소스극장ㆍ야외음악당ㆍ그리고 여러 신전들이 당시 막강했던 아테네의 명성을 한눈에 읽게 해주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아레오빠고」언덕은 바로 그리스도교가 처음 아테네에 소개된 장소로 순례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사람들에 의해 아레오빠고 법정에 선 바오로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선포하게 되고 많은 이들이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개종을 하게된다. (사도17, 19)
사도행전 17장34절의 무대가 되는 아레오빠고, 당시의 현장을 바라보는 순례자들에겐 불 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한 바오로사도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잠시 감회에 젖게 된다
바오로사도의 제2차 전도여행에서「필립비」는 그리스땅의 첫 방문지가 된다. 당시 4개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던 마케도니아 첫 지방의 고을로 로마의 식민지였던 필립비에서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히는 수난을 겪는다. (사도 16, 16~40) 그리스의 동북쪽 불가리아국경근처에 위치한 필립비는 BC 356년 마케도니아의 필립2세에 의해 국경을 방어할 요새로 가파른 언덕위에 세워졌던 도시.
바오로사도의 방문으로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곳은 이교도신을 포기, 적극적인 자세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역시 마케도니아지방 북부도시로 그리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던「데살로니까」는 필립비에 이어 바오로사도의 방문으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게 된다. 현재 살로니까로 불리는 이곳에서 바오로사도는 AD49년~50년 겨울까지 머물면서 신자들을 격려, 교회발전에 큰 몫을 담당한다.
여러 번씩 추방당하면서도 전교에 전념한 바오로사도는 데살로니까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이에 힘입어 데살로니까는 초기 그리스도교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이번 순례일정에는 필립비와 데살로니까 방문은 빠져있었다 사도들의 2차 3차 전도여행의 핵심을 이루었던 그리스땅의 순례는 고린토와 아테네 방문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행일정과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는 없었지만 바오로사도의 열정과 웅변의 자취가 서려있는 필립비와 데살로니까 순례가 빠진 그리스 순례는 역시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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