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푸치아를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곳을 들어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공상화 된 사회주의국가인데다 우리나라와는 국교가 이뤄지지 않은 미수교국이며 오랜 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된 고립된 곳으로 어떻게 초청장을 받았으며 비자는 어디서 받았고 캄푸치아까지의 입국경로는 어떠했는가 등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또「그 당시의 실정은 어떠했는가」에 대해 퍽이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번 마지막회를 통해 그동안의 과정을 소개하고자한다.
물론 우리가 한국에서 캄푸치아와 직접 교신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할 뿐 아니라 초청 받을 수 있는 창구도 전혀 불가능하다.
이번 특집프로그램 취재를 맡은「시네텔-서울」이 프놈펜과 닿을 수 있는 日本의 NDN社라는 바늘구멍 같은 유일한 연결선과 유대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동경에서조차 모스크바를 통해야만 교신이 가능한 어려운 통신망을 통해 비자발급의사를 타진하기까지의 모든 외교ㆍ행정절차는 모두「시네텔-서울」이 떠맡았기에 짧은 기간에 출국준비가 가능했다.
솔직히 막상 일정을 잡아놓은 후에도「킬링필드」에 대한 선입관적 두려움과 공포감이 강하게 엄습해왔다. 더구나 주위친구들의 한결같은 충고와 경고는 출국결심을 몇 번이고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1975년 공산화이후 한국 사람으로서 최초의 입국이라는 희소가치에 대한 막연한 스릴감 내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결심과 망설임이 교차하는 속에 드디어 5월 22일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맡기기에 이른 것이다. 캄푸치아를 들어가려면 베트남을 거쳐야 하고 베트남을 들어가려면 방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베트남을 경유하여 태국으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프놈펜에 특파되어 현지생활의 경험을 거친 일분 NDN사 직원의 안내로 다음날 아침 일찍이 방콕주재 베트남공관에서 베트남입국비자를 받아냈다. 그리고는 오후에 하노이로 향하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없는 항공편을 탑승하게 된다. 몇 가지 놀랄 사실은 여객기라 하기 보다는 오히려 화물편이라고 함이 타당할 정도로 많은 짐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콕이라는 공식적인 대외창구를 통해 엄청난 양의 생필품을 수송해야하기 때문이란다. 짐이 초과될 때는 자연히 여객손님이 차선(次線)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될 정도로 화물에 대한 우선권이 대단하다. 비행기는 소련제 구형으로 에어컨의 작동은 비행기 이륙 후 10여분이상이 지난 뒤에야 엔진작동과 함께 서서히 이뤄지므로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찜통을 연상하면 될 정도로 덥다.
그리고 행선지 공항에 착륙하기 전에 입국카드와 물품신고서 기입을 비행기 안에서 미리 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인데 하노이 입국시에는 그렇지가않다. 일단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기입하고 특히 외화 소지액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일일이 액수를 손으로 헤아려 확인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노이의 첫인상은 붉은색의 깃발과 인민군복장과 비슷한 군복 및 붉은색의 모자 마크와 벽보 등이 퍽이나 자국적으로 섬찟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시가지는 대단히 음산한 느낌을 주었으며 일반인들의 의상은 검정색과 흰색의 단조로움 일색이었다. 주로 정글속의 게릴라전에 익숙했던 호지명군은 아마도 의상스타일이나 도시개발에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던 모양인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시가지까지의 거리는 약 50㎞로 1시간정도 소요되며 그 사이의 느낌은 한마디로 찌들을 정도로 궁핍한 농민들의 무표정을 바라다보는 연민의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하노이에서 1박 하며 하노이주재 캄푸치아공관에서 입국비자를 받으랴 비행기표도 하노이에서만 구입하게끔 되어 있다 보니 이래저래 퍽이나 부족한 하루를 보냈다. 음식점, 호텔, 전기사정, 물 사정 등은 수준이하로 하노이가 오랫동안 월맹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의심할정도이다. 전혀 기능적인 면이 없는 말만의 도시가 아닌가하고 느낄 정도이다.
하노이에서의 외화 특히 미국 달러가치는 대단하다. 암거래가 성행하고 있으며, 호텔을 가든 비행기표를 사든 음식을 사먹든 일단 달러 지폐가 나가면 거스름돈이 되돌아올 줄을 모른다. 현지화폐로 받든지 아니면 거래를 포기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잔돈 거슬러 받기 위해 오후까지 기다리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의 선택은 결국 잔돈을 포기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미리 알았더라면 잔돈을 많이 준비했었을 걸 하고 후회만 했을 뿐이다. 잔돈 바꿈의 아우성은 하노이 공항을 떠나면서 내는 5달러의 공항세 지불과정에서도 재연된다. 무려 5시간 정도의 사우나와 같은 열기를 공항대기실에서 견뎌낸 후에야 비로서 프놈펜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태국에서 직행할 수 있다면 불과 1시간미만의 거리이건만 수속과 과정이 그렇게나 까다롭고 복잡해야만 하는 국제정치 게임의 현실에 분노를 느껴보기도 한다. 아울러 이념적으로는 베트남의 남과 북이 통일되었으나 남북교류가 실질적으로는 제한을 받아 언젠가라도 자본주의 물결에 흠뻑 젖은 사이공 (現 호지명시) 을 한번이라도 가봤으면 하는 꿈에 어린 하노이 사람들의 푸념이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캄푸치아의 대외 창구역할을 고집해온 베트남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소련, 킬링필드의 원흉인 크메르루즈의 대부인 중공과 태국의 협조, 캄푸치아 고립화의 도선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 등의 얼키고 설킨 복잡 미묘한 역학관계가 하루빨리 풀려지기를 바란다.
서방세계로부터의 외면과 고립화에서 탈피하고 절대빈곤과 킬링필드 재연의 공포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캄푸치아의 내일을 기원하면서 평화와위로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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