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을 날으는 비행기는 구름을 헤치며 점점 한반도를 멀리하고 있다. 받아든 포도주 잔을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날아감은 지나쳐온 과거의 삶을 되씹게 하고 있다. 마음한구석에 옹졸함이 가득했음이 사실이었다면 이를 조금씩 벗겨내야 하는 것이 또한 사실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세워야하는 것일까? 하여 이미 나의 몸은 던져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한계 속에서 하나의 하늘만을 쳐다보며 30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라면 이제 하나의 하늘을 내려다보며 다른 현실과 맞부딪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당신은 이 길로 나를 인도했습니까?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고자 하는 이 마음을 받아주소서』
어느새 홍콩상공에 들어선 비행기는 착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1시간30분가량 홍콩에서 머물고 태국의 상공을 향해 비행기는 지상의 다시 박차고 있다. 이륙하는 순간 비행기 안의 소음을 꿰뚫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는 나에게 무척 인상 깊게 들렸다. 태국을 가기 위해서는 항로가 베트남의 상공을 지난다고 해서 애를 써서 창밖을 내려다보았지만 어디가 베트남인지 알 수가 없었다. 태국상공을 날며 착륙 준비를 하는 동안 창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밀림이 있을 줄로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도시근교라서 그런 것인가?
비행기를 나서는 순간 후끈한 열기는 열대지방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입국수속을 하면서 한 가지 놀란 것은 절차가 매우 간단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짐을 조사하지만 이곳은 가방을 한번 들어보고는 통과이다. JRS직원의 마중을 받으며 공항을 나서는 순간 그는 택시를 잡기 바쁘다. 운전사와 계속 흥정을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거리에 따라서 요금을 흥정한다. 겨우 흥정이 맞아 떨어져 택시를 타고 발콕(BangKok)의 시내를 들어가는데 펼쳐지는 풍경들이 서울과는 무척 달랐다 소음과 매연, 그렇게 깨끗한 풍경은 아니다. 한국의 70년대 초반의 모습과 같다. JRS직원의 안내로 태국 예수회 수도원인 자비엘홀(XAVIEL HALL)에 도착, 신부님들의 환영을 받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원장신부님의 안내로 집 구조를 설명 받고 나의 방에 들어섰다. 마음속에 어느새 나의 기도가 떠오르고 있었다.
『주님 이제 여기와 서있습니다. 이국이라는 풍치를 느끼며 똑 같은 당신에 대한 지향이 한방 가득하옵니다. 무더운 열기는 한국의 여름을 연상시키고 조금 상기돼있는 저의 기분을 어디에다 두어야할지 모르겠나이다. 당신은 항상 열려있는 마음으로 저를 받아주었음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여 이렇게 우뚝 선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고자 합니다. 기다림에 익숙해있기에 기다리고 당신의 모습을 연상하며 하나의 껍질을 벗고자합니다. 언제다시 이 껍질을 되 입을지 모르지만 지금 저의 한 껍질을 벗고 싶습니다. 한껍질씩 벗기는 삶이 바로 당신께 저의 생애를 바치는 것이라 믿습니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샤워를 한 뒤 잠자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한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첫째 모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둘째는 시간차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태국이 저녁 6시면 한국은 8시가 된다. 선풍기를 계속 켜놓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공기자체가 더워서 그런지 하나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은 아침 5시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미사에 참석했다. 태국말로 봉헌하는 미사였다.
미사 중에 한국말을 생각하면서 경문을 따라 하려고 했지만 이것이 웬일인지 이상하게도 한국말 경문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2월 13일 토요일 JRS직원의 초대로「파타야 (Pattaya)」라는 유명한관광지로 1박2일 예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도시는 해안 도시로 태국을 여행하는 관광객 거의가 이곳을 방문한다. 「방콕」에서 약 1백50㎞ 떨어진 곳이다. 우리는「레뎀썬 (Redemption)」수도원 피정 집에 머물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곳에 있는 성당의 건물구조가 불교사원과 거의 비슷한 모양이어서 매우 놀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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