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성소(聖召) 못자리를 꼽는다면 왕림(旺林)은 단연 그 으뜸의 자리에 선다.
1백50년 이상된 유서 깊은 성교촌(聖敎村)으로 40명이 넘는 성직자와 1백여명의 수도자를 배출했고 또 현재는 수원가톨릭대학이 들어서있는 샘물과도 같은 성소의 밭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해지는 사료가 미비, 정확한 명단은 파악할 수 없지만 확인된 성직자는 순수 왕림본당 출신의 경우 1923년에 서품받은 박동헌 신부(작고)를 비롯, 최윤환 최경환 형제 신부 등 8명에 이른다.
또 서품당시 교적은 왕림본당에 두지 않았지만 왕림에서 어릴 때부터 성소의 꿈을 키웠던 사제는 소설 「은화」의 저자 윤의병 신부(6.25때 피납), 원로 교회사가 오기선 신부 등 7명이 확인되고 있다.
수도자도 1897년 샬뜨르 성바오로 수녀회에 3명이 입회한 것을 시작으로 왕림에서만 20여명이 배출됐으며 이중 한 가정에서 4명의 자매가 모두 수녀회에 입회하는 등 성소의 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확인되고 있지는 않지만 왕림을 터전으로 성소를 키워왔던 성직자ㆍ수도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1888년 왕림본당이 설립됐고 그 후 10여년이 지난다음 구포동본당(1900년), 안성본당(1901년)이 설립됐음을 감안하면 1900년대 초순까지 서품을 받은 수원교구 관할지역 사제는 모두 왕림본당 소속이 되는 셈.
따라서 양지출신 한기근(1897년 서품ㆍ작고) 신부 등 20여명의 사제도 결국 왕림에서 성소의 싹을 키운 것으로 파악돼 왕림출신 사제수는 40여명에 이르며 수도자도 1백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처럼 많은 성직자ㆍ수도자들이 왕림에서 배출된 배경에 대해 본당 신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교우촌을 지켜온 초기교회 신자들의 신앙심 ▲일찍부터 시작된 개화기 교육의 영향이라고 입을 모은다.
왕림, 일명 갓등이(加等里)에 교우촌이 형성된 시기는 1839년 기해박해 무렵. 일부에서는 이미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교우촌이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산세가 험하고 밖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등 자연적 지리조건이 교우촌 형성에 매우 적합한 왕림은 당시 해로를 따라 당진으로 입국한 선교사들이 서울에 가기 전 반드시 하루 밤을 쉬어가던 곳으로 자연 선교사들의 전교활동이 활발, 일찍부터 신앙의 묘판이 잘 가꾸어졌다.
앵베르 범 주교가 성무를 집행할 때 신자들이 전례에 참석하기 위해 밤새 수십리 길을 달려왔다는 교회사의 기록에서 보여지듯 왕림지역 신자들의 신앙열성은 매우 높았으며 이 열성이 후일 성소육성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신자들의 깊은 신앙심과 함께 왕림지역 성소자 배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인재양성을 위한 육영사업. 삼덕학원(1892년)→신명의숙(1914년) →광성국민학교(1945년)→수원가톨릭대학(1984년)으로 이어진 왕림의 교육사는 주민들의 문맹율 퇴치와 함께 교리교육에도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특히 광성국민학교는 한국천주교의 첫 사학으로서 수많은 성소자 배출의 요람이 됐으며 그 결과 84년에는 수원가톨릭대학이 들어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같은 교육의 뿌리는 애당초 주민들의 문맹으로 인해 본당신부들이 전교 및 교리교육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에 반해 시작된 것이었지만 맹목적인 신앙의 자세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로 승화시켰을 뿐 아니라 자연적인 성소육성의 장으로도 적극 활용됐다.
왕림에서만 80년을 살아온 왕림본당의 산 증인 최상헌(도미니꼬ㆍ80세)옹은 『왕림은 경기도 지역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성소온상』이라면서 『벽촌외지에서 이처럼 성소의 싹이 잘 틀 수 있었던 것은 교우촌인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힘이 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왕림본당 출신 이정운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도 『수원가톨릭대학이 이곳에 들어서는데는 왕림본당의 공헌이 무척 컸다』고 전하면서『개인적으로 유서 깊은 왕림출신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 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4대 본당주임 김원영 신부 당시 관할공소 69개소에 신자 총수 2천 7백여명의 비약적인 교세도 본당분할과 함께 잦은 이농현상으로 현재 2개공소 1천여명 신자로 침체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신자 감소와 더불어 성소자도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는 점이 안타깝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본당신자들은 내년 본당 설립 1백주년을 앞두고 1백주년이 본당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성전건립, 본당 뿌리 찾기 운동, 신앙 쇄신을 위한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료부족으로 왕림출신 사제들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 확인이 된 사제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망 및 행방불명 윤의병, 박동헌, 이여구 ▲서울대교구 오기선(교회사가) 고명철(상봉동본당 주임) 안상인(연희동본당 주임) 임덕일(오류동본당 주임) ▲수원교구 최윤환(휴양) 최경환(수원가톨릭대학) 이정운(“) 김정원(고등동본당 주임) 김화태(장내동본당 주임) 송영규(대학동본당 주임) 최성환(군종) ▲인천교구 강용운(담동본당 주임) ▲부산교구 허성(광주 가톨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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