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그리스 아테네 공항을 떠난지 꼭 1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터키의 날씨는 쾌청했지만 터키「이스탄불」공항에서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힌 냄새가 있었다. 바로「유연탄」냄새였다. 눈물이 나올 만큼 지독한 유연탄 냄새는 터키를 순례하는 동안 줄곧 우리를 동반했다.
어느 도시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유연탄냄새는 오히려 터키를 우리 가까이로 이끌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다.
그것은 마치 고향의 냄새(?)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터키는 유럽주와 아시아주를 잇는 교량적 위치에 있지만 78만km의 면적 97%가 아시아에 속해있는 아시아국가. 인구의 99%가 모슬렘인 터키 곳곳은 이슬람 문화의 흔적들을 담고 있었다. 하루에 5번,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사이렌소리, 그 뒤를 이어 낭랑하게 낭송되는 코란독경은 모슬렘 국가로서의 터키의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쾌활하고 인정이 풍부한 그들의 성품, 초행길의 터키순례를 유쾌하게 이끌어 주었다.
지금은 비록 모슬렘 분위기가 터키를 감싸고 있지만 터키의 여러 지역들은 바오로사도와 그 동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핵심이자 중심지.
바오로 사도의 2차ㆍ3차 전교여행의 중심을 이루었던 터키의 복음화를 시작으로 사도들은 이방인 전교의 발판을 마련하고 소아시아 전지역의복음화는 황금기를 맞게 된다.
갈라디아서의 무대가 되는「앙카라」에서부터 바오로사도가 설교하다 매를 맞고 쫓겨나는「이고니온」(현재 꼬냐), 지하교회 지하도시가 산재해있는「카파도키아」라우디기야교회가 있던「파무갈레」, 필립보사도가 순교한「히에라폴리스」, 요한사도의 무덤, 교회가 있던「셀쥴」, 성모마리아께서 사셨고 루까사도가 순교한「에페소」,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 탄생시킨「이즈밀」에 이르기 까지….
터키 중심부에서 남ㆍ서쪽을 연결하는 거의 전 지역에 산재한 당시의 교회, 이곳의 복음화를 위해 14년이란 세월을 봉헌한 사도들의 발자취를 찾는 길은 큰 기쁨과 흥분 속에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사도들의 시대에 이미 1백40개의 교회를 자랑하던「에페소」, 이는 터키의 복음화 그 현장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에페소」「스미르나」「베르가모」「리아디라」「사르디스」「필라델피아」「라오디게이아」.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아시아의 7대 교회가 있던 곳도 바로 터키라는 사실 역시 순례자들에게 새삼스런 놀라움이 되었다.
터키순례는 「앙카라」에서부터 열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곧장 수도「앙카라」로 날아온 우리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기대, 그리고 사도들의 발자취를 찾는다는 흥분과 더불어「카파도키아」로 향했다.
현실적인 여건상 사도들처럼 「안티오키아」(시리아지역)에서의 출발은 불가능했지만 유난히 한국 사람을 좋아하는 듯한 터키인 안내원과 운전수, 조수의 밝은 웃음과 친절 속에「카파도키아」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저녁 무렵「카파도키아」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무수한 동굴들이었다. 약 3백만년 전에 있었던 지진 활동에 의해 화산에서 뿜어 나온 화산재로 형성된 암석지대인 이곳은 원추형 모양의 석주들이 수천개가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암석을 파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과 함께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동굴 속의 교회와 무수한 프레스코성화들이었다. 이 동굴 속에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졌던 흔적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프레스코 성화를 통해 그대로 입증되고 있었다.
동굴교회「괴뢰뫼」와함께 또다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지하도시「대린쿠유」들이었다.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면서 신앙을 지키고 가꾸려했던 그리스도교인들의 생활터전이자 교회였던 동굴교회와 지하 도시들은 바로 터키 복음화의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깊은 우물이란 뜻의「대린쿠유」속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듯 했다. 포도주를 만들었던 장소ㆍ안방ㆍ부엌ㆍ식료품 저장창고ㆍ우물ㆍ교회ㆍ심지어 가축을 키우기도 했던 이곳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3백년이란 세월을 숨어 지내야했다. 그들의 신앙을 사수하기 위해 터키의 까따꼼바라 할 수 있는 지하도시교회에서 우리 순례단은 터키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지양으로 소박한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의 미사광경이 신기했던지 동굴교회 미사 때에는 현지 어린이들이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우리의 미사에 동참해주었다.
「이고니온」을 거쳐 곧바로 라무디게이아교회 유적지로 향했다. 요한묵시록에 기록된 7대교회중의 하나인 이곳은 당시 15만명의 주민이 거주했으며 대학과 학문이 발달했던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지고 있다. 「라우디게이아」교회의 믿음이 덮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한(묵3, 15~16)성서의 기록을 묵상하면서「히에라폴리스」를 찾았다.
「라우디게이아」로 부터 10킬로 북방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는 일찍부터 초대교회가 설립될 만큼 일찍부터 초대교회가 설립될 만큼 기독교가 융성했던 지역. 아직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앙상한 폐허만 남아있는 이곳은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ㆍ야외극장터 등이 약간의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순례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대형의 「공동묘지」. 이곳에는 약 1천 2백개 이상의 석관이 발견됨으로써 각국에서 휴양차 모였던 온천지대였음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비잔틴시대에 세웠다는 필립보사도의 순교 기념교회 유적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아쉬운 발길을「파무갈레」로 향했다.
「히에라폴리스」남쪽 경사부분을 지칭하는「파무갈레」는「목화성」이라는 뜻. 온천물에 다량으로 함유된 칼슘의 축적으로 흡사 목화송이가 만발한 성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섭씨 35도로 심장병ㆍ소화기장애ㆍ신경통에 특수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황제들이 찾은 곳으로 유명한 온천장들이 산재해있다.
그리스의 철인 탈레스와 헤라클리트가 활동했던「에페소」는 항구도시. 로마시대 소아시아 서부지역의 수도로써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누렸던「에페소」의 발굴모습은 로마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페소」는 AD4세기경 소아시아의 기독교 중심지가 될 만큼 전성기를 누렸으며 1백 40여개의 교회가 에페소 전 지역에 산재해 있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곧바로 에페소에서 7km 떨어진 성모님 생가(사셨던 집)를 찾았다. 그리스정교회 소속의 유고 수녀들이 관리를 맡고 있는 성모님 생가는 붉은빛갈의 벽돌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소박한 경당으로 꾸며진 이곳은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ㆍ그리스정교와 함께 마호멧교도까지 순례하는 유일의 장소.
한적하기만 하던 터키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성모송을 봉헌했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이 장소는 19세기 초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61년 교황 요한 23세는 이곳을「성소」로 공포하기에 이른다. 67년 교황 바오로 6세가, 79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순례함으로써 이곳은 성모님의 생가로써 그 위치를 확고히 다진바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사도의 무덤역시 에페소에 남아있다.
에페소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성모마리아를 에페소로 모시어 왔고 성모 마리아는 이곳에서 생애를 마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요한사도의 무덤위에 세워졌던 교회는 거의 파괴됐지만 그동안의 발굴 작업으로 당시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 상태로 순례자들을 맞았다.
에페소에서 또 하나 순례자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성모마리아교회. 소아시아 교회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된 이곳은 431년「에페소공의회」가 열렸던 교회로 추정되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성모님의 확고한 위치를 확인한 에페소공의회, 그 현장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에페소교회의 재건을 마음모아 기도했다.
성모님을 모시고 노년을 보내며 요한복음을 썼던 요한사도와 더불어 마르꼬, 루가사도의 전교지이기도 한 에페소 순례는 우리들에게 복음화를 향한 사명감을 새롭게 일깨워 주는 듯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