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신명호 (안드레아ㆍ인천 답동본당ㆍ43)씨는 약을 절대 「팔지」않는다. 자신의 약국에 놓여있는 약들은「상품」이 아니고 환자들을 위한 「사랑」이기에 팔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을 나눠준 댓가로 들어오는 「약값」은 또 다른 이웃을 위해 쓰여질 사랑의 재료이기에 어디까지나 주고 받는것이지 팔고 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천시 중구 내동 212~10번지「신천지약국」. 신씨는 이곳을「작은 성전」이라고 부른다.
치유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고 또 그분을 찾으러 오는 선민(選民)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그는 늘 성전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신씨는 그의 약국을 찾는 고객에게는 모두 친절해야 하고 또 다 같이 아끼고 싶은 이웃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신씨가 「이웃을 아는 사람」으로 추천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성전 안에서만 「사랑」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교도소 내에 한창 피부병이 전염되고 있을 때 남몰래 3년간 비싼 약을 공급했던 일, 매년 성탄 때 집에서 떡과 카드를 만들어 노점상들에게 돌리고 있는 일, 이웃집 불우노인들에게 몰래 연탄과 쌀을 들여 놓은 일, 불우 청소년에게 매월 장학금을 대주는 일등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성전 안이건 밖이건 가리는 법이 없다.
주위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하는 생활신조가 그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신씨가 「모르게」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의 부인 최윤순 씨(알렉산드리아ㆍ37)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광주에서 출생, 조선대약 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제약회사에 다니던 중 부인을 만나게 됐고 매주일 명동성당을 약속장소로 정하던 것이 계기가 돼 75년 부부가 동시에 영세, 입교하게 됐다는 신씨는 결혼초기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영위했으면 상당한 어려움도 겪었다고 회고한다.
생활고에 찌들리던 신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인천으로 내려와 약국을 개업, 점차 돈벌이에 몰두해 갔고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은 하나 둘 잊어갔다.
그러던 중 신씨는 자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던져 주게되는 계기를 만나게 됐다.
서울 화곡본당 예비자 교리반 때 교리를 가르치던 본당수녀와의 만남과 꾸르실료와의 만남이었다.
3개월마다 한번씩 약국을 찾은 본당 수녀는 신씨에게 보다 좋은 일을 위해 돈을 선용할 것을 권고했고 신씨 역시 꾸르실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이것이 81년.
한번 변화되기 시작한 신씨의 눈에는 그전까지 귀찮게만 여겨지던 노인들이나 남루한 옷차림의 손님들이 정다운 이웃으로 비춰지기 시작했고, 약국 앞 노점상들의 생활이 점점 아름답게 투영돼갔다.
신씨는 『이웃을 찾은 후 노점상들의 벌겋게 달은 얼굴과 얼어붙은 손마디마저 아름답게 보였다』면서『현재 나 자신이 사회에서 안정된 자리를 구축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님이 도구로 쓰기위해 베푼 것 일뿐』이라며 자신의 선행을 극구 그분의 뜻으로만 돌렸다. 아울러 약값도 그분의 것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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