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
인간을 이성(理性)적 동물이라고 했다. 인간이 지닌 이성은 지능(智能) 의지(意志) 정서(情緖)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지능은 진리를 추구하고 의지는 선을, 정서는 아름다움(美)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이성」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는 진 선 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인간은 밥을 먹고 살지마는 궁극적으로 진ㆍ선ㆍ미의 초월적인 개념을 찾는다. 어떤 철학자는 인간의 생긴 모습으로 인간의 초월성과 존엄성을 표현했다. 인간은「직립인간」이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머리가 옆으로 붙어 있지만 인간만이 유일하게 머리를 하늘로 향해서 지음을 받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말한다. 인간은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마는 머리는 하늘로 향해있다. 이것은 인간은 비록 지상에서 살지마는 그들의 고향은 하늘이라는 뜻이다. 영원한 이상을 추구하고 무한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하늘스러운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매사에 있어서 이 지상적인 물질적인 조건 속에서는 언제나 권태를 느끼게 마련이고, 더 높고 더 귀한 초월성을 추구한다. 영원한 향수를 느끼면서 몸부림친다. 이러한 인간의 몸부림을 달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한한 행복을 찾아 헤매는 인간 주체를 만족시킬 대상은 무엇인가? 영원한 사랑을 찾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헤매는 인간에게 그 무엇이 해답을 던져줄 수 있겠는가? 진ㆍ선ㆍ미의 개념은 물질적인 것도 어떤 한계점의 개념도 아니다. 영원한 개념, 무한한 개념, 초월적인 개념이다. 이것을 찾아 헤매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초월성과 존엄성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초월성을 찾는 주제만이 있고 그것을 채워줄 객체가 없다면 이거야말로 주객이 맞지 않는 부조리 중의 부조리가 아닐 수 없다. 갈증이 있으면 물이 있고 꽃이 있으면 벌이 있고 소리가 있으면 이것을 받아들이는 귀가 있어야함은 자연의 질서인데 어찌 인간만이 영원한 세계를 찾고 무한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 이 주체를 채워줄 객체가 없단 말인가?
무한과 영원의 요소를 지닌 인간주체를 채워줄 그 객체는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여야만 한다. 그 사랑도 그 행복도 영원하고 무한해야한다.
종교 없을때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
그의 생명도 끝이 없어야한다. 이 무한한 그분의 찾음, 그분의 만남이 인생의 종착이라고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벌써 이야기한 바가 있다.
이러한 인간본질적인 해답인 영원자와의 만남, 무한한 자와의 대화 이것이 종교라고 한다면 종교라는 차원이 없이는 인간은 영영 부조리한 존재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에로의 향수가 향수로 끝나버리고 만다면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살만한 가치가 없다. 인간의 실존본질로 보아서도 절대존재는 있어야하고 이것을 만나게하는 종교의 차원은 있어야한다.
이렇게 쉽게 생각해 보자.
어떤 짓궂은 사나이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데 그 계란 속에 오리알을 하나 넣어놓았다고 생각하자! 어떤 묘한방법을 써서 20일후에 병아리 속에 오리새끼가 한마리 끼어나왔다. 다른 병아리는 엄마 닭을 따라 다니면서 마냥 행복하다. 그런데 오리새끼는 완전히 거기에서 소외를 느낀다. 오리새끼에게는 병아리의 세계가 이방 세계이다. 오리는 물에 들어가서 헤엄을 쳐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가 병아리 속에서 1백년을 2백년을 살았다고 하자. 그 오리는 과연 삶의 보람을 느낄까? 이 세상에 태어난 진정 삶의 의미를 깨닫겠는가? 아니다. 마냥 오리에게는「물」이라는 대상을 찾아서 언제나 욕구불만 속에서 하루 하루를 지겹게 소일 할 수밖에 없다.
오리는 물속에 들어가서 헤엄을 쳐야한다. 이것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물이라는 객체가 없는 오리의 주체는 항상 부조리 속에서 주객의 불일치라는 무서운 불행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오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헤엄치는 본능」은 으례 그 대상인「물」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이라는 대상이 없이「헤엄치는 그 본능」은 의미 상실이다. 그래서 오리는 병아리 속에서 1백년을 사는 것 보다 물속에서 단 5분을 살아도 그것이 의미가 있고 삶의 보람을 준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선택한 내 생명이 아니고 우리가 선택한 영원한 세계에 대한 욕망도 향수도 아니라 주어진 귀한 선물이다. 이와같은「영원한 향수」의 선물을 받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으례히 그 길이 있어야 한다. 그 길은 없고 그 욕망만 주어졌다면 이거야말로 헤엄치는 본능은 주어졌는데 헤엄칠 물이 없는 오리의 부조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나?
영원한 향수병은 물질세계서 찾을 수 없어
인간의 본성은 주어진 것이다. 이 본성을 준신 그분은 그 본성이 싹트고 꽃이 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조건도 그 길도 동시에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찾아야한다. 그런데 오늘의 인간은 그 길을 고작 물질세계에서 감각적인 차원에서만 찾아 헤매려고 한다. 이것은 오리가 병아리 속에서 풀밭에서 헤엄을 치려고 풀을 잡는 것이나 다를바가 없다. 거기서는 헤엄이 될 수 없다. 인간도 인간이 지닌 영원한 향수병은 물질세계에서 그 치료가 될 수 없다. 오직 영원한 세계와 연결해주는 종교적인 차원에서만이 그 길이 가능하다.
이렇게 이성을 지닌 인간은 진선미라는 초월적인 개념을 찾아서 영원한 세계를 꿈꾸고 있다. 이 꿈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아도 인생은 허무하다. 부조리하다.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비록 짧은 인생이지마는 영원한 세계로 가는 그 길을 안다면 짧은 인생은 영원과 연결되는 귀한 삶이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가르침이요, 신앙의 세계라고 한다면 종교없는 인간에게는 행복도 사랑도 인생도 모두가 의미 상실이다. 그래도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류의 어느 역사에도 인간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만이 인간이 느끼는 영원의 향수병을 달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만이 인간이 지닌 본성과 그 삶의 의미를 답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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