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쇄신의 계기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이 땅에서 사도직을 수행해온 것이 올해로서 백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녀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수녀회가 걸어온 은총의 길 백년을 뜻 깊게 맞이하기 위해 여러 가지일들을 준비하면서 그 준비 작업의 목적을 각 회원과 수도 공동체의 내적 쇄신에 두었다. 수녀회의 내적쇄신은 결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회원으로서의 우리 신원을 재확인하고 이 시대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사도적 활동에 더욱 잘 투신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이란 모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원천과 각 회의 창립 당시의 정신에 계속 돌아감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하는 상황에서의 적응을 내포하는 데 있다』(PC2항)고 권고하였다.
이와 같은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르며 백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수녀회는 수녀회의 창립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수녀회 각 회원들의 사도적 삶을 지지해주는 영성적 바탕이 무엇인가를 다시 살펴보며, 수녀회의 사도직 활동이 취해야 할 미래에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했다.
수도회 영성의 배경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창설되던 17세기 프랑스는 정치ㆍ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극단적인 이성주의(理性主義)와 합리주의 철학이 풍미했고 교회 안에서도 정적주의(靜寂主義)나 쟌세니즘과 같은 이단사상이 난무했다.
이러한 가운데서 건전하고 충실한 영성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교회 안에서 대두되고 17세기에「프랑스 영성학파」가 출현했다. 이 영성학파는 삐에르 드 베뤼르(1575~1626) 추기경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을 기반으로 하였다. 그리스도중심적인 영성에서는 죄에 시달리는 비참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선(善)하심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 영성학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된 인간의 소명을 자신을 우원하신 그리스도의 생애에 동참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곧 우리 자신이 또 다른 그리스도의 삶을 살면서 이웃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이며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17세기 프랑스영성학파의 사상은 뱅상ㆍ드ㆍ뽈을 비롯한 여러 사목자 및 수도단체의 영성생활에 새로운 영양을 공급해주었고 그들의 사목적 활동에 활기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성 바오로 수녀회 영성의 골격을 형성시켜 주었다.
수도회의 창설
1694년 프랑스의 한 작은마을 러베빌ㆍ라셔날의 주임신부로 부임한 루이ㆍ쇼베(1664~1710) 신부는 17세기 프랑스 영성학파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 그리고 뱅상ㆍ드리ㆍ뽈의 실제적이고 사목적인 정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쇼베 신부가 러베빌에 부임했을 때 그 마을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폐허화 됐고, 사람들은 체념과 절망으로 삶의 의욕을 상실했으며 무지와 질병이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이곳의 주임사제인 쇼베 신부가 마을 사람들을 절망과 무지와 질병,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사도적 열정으로 타올랐을 때 그를 돕기 위해 네 명의 처녀들이 자원하여 나왔다.
이들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첫 수녀들이었다.
이들은 주임신부를 도와학교에 가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고 환자들을 방문하였다. 이들의 선한 의지는 곧 완고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이들을 위한 작은집 한 채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 공동체에 합세하는 처녀들도 점차 늘어났다. 이렇게 작고 조촐하게 시작된 수도 공동체는 1708년에는 창설지인 러베빌로부터 샬트르로 이전했고, 수도회의 모원이 새롭게 자리 잡은 이곳의 지명과 사도 바오로의 선교열을 본받으려는 정신에 따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로 부르게 되었다. 이 수녀회는 1727년에 이르러 바다 건너 해외 선교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23개국에 4천여명의 회원을 가진 국제적인 수도회로 성장하였다.
수도회의 사도직
창설지에서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봉사하고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주요 사도직은 어린이들의 교육과 환자간호이다. 즉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웃사람들을 가난에서 풍요로움으로 끌어올리는 일,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형제들에게 갖추어야할 인간본래의 품위를 되찾아 주는 일을 소도회의 고유한 사도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수녀에게 이러한 사도직에의 투신을 촉구하는 영성적 바탕은 프랑스 영성학파의 영향을 받아 수녀회를 창설했던 루이, 쇼베 신부의 정신과 창설의 협조자였던 초창기 수녀들의 영성에 두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이며 특별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중시하는 빠스카의 영성이다. 이를 수녀회의 회헌에서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의 영성은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신앙과 그의 복음에 대한 불타는 열의로써 나타나는 그리스도중심의 영성과, 극기와 죽음 안에서 새 생명과 끝없는 기쁨의 씨앗을 알아보는 빠스카의 영성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고아들의 양육 사업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이 교육과 환자간호, 전교 등의 사도직 활동을 하며 이 땅에서 백년을 살아왔다. 백년의 역사 안에 연연히 흐르고 있는 커다란 영성적 맥락은 극기와 죽음 안에서 새 생명을 끌어내는 빠스카의 영성이다. 수녀회는 한국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던 구한말 이후 35년간의 일제식민통치, 그리고 해방에 잇따른 한국전쟁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헤쳐 왔다. 수녀들은 굶주림과 가난, 질병과 온갖 형태의 죽음 안에서 불우한 이웃 형제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웃의 형제들이 그리스도 안에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면서, 수녀들 자신도 구원에의 신앙 안에서 감사와 찬미의 삶을 그리스도께 봉헌하고자 했다.
현대 사회는 노인과 청소년, 장애자, 도시빈민 등 고독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요청되고 있다. 수녀회는 이러한 시대적 소명과 수녀회의 고유한 영성에 따라 현재 여러 가지 사회사업 및 특수사도직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이 분야에서 봉사의 폭을 넓혀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녀회는 이제까지 한국의 특유한 상황 때문에 본당에서의 전교 사도직 분야에서 많이 봉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직 현황은 선교 2백년 대를 전망하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재평가를 요구받고 있다. 그래서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그동안 실천해왔던 교육과 의료사도직 및 사회복지 활동을 재음미하며,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직후부터 보육원에서, 그리고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봉사했던 역사적 전통을 새롭게 하고자한다. 이로써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영역을 되찾고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수녀회의 고유한 영성 및 카리스마를 좀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