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했다. 도시마다 어김없이 진동하는 유연탄냄새도 그렇고, 그리 깨끗하지 못한 도시 환경도 우리에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더구나 영화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던 「이스탄불」과의 상봉은 설레임 속에 이루어졌고 우린 약간씩 들뜨기 시작했다.
6ㆍ25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참전했으며 또 현재는 국제무대를 통해 한국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터키와의 만남은우호적일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터키의 국민소득은 1천 2백불 정도. 외형적으로 볼 때 터키는 부유한 나라는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여유가 있었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넉넉함은 현실적인 그들의 부족을 채워주고도 충분한 듯 했다.
80년대 초 물가가 무려 20배가 급등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불만이 없다는 터키인. 따뜻하고 여유 있는 그들의 성품은 참을 때까지 참고 믿을 만큼 믿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한번 화나면 걷잡을 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안내자로부터 이색적인 터키의 문화를 귀동냥으로 듣는 동안 수도「앙카라」를 출발한 일행은「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광활한「카파도키아」지역에서 우리를 압도한 것은 무수히 널린 바위와 동굴들이었다.
원추형모양의 바위 속으로 뚫려있는 동굴들이 바로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이 3백년 가까이 숨어 신앙을 지킨 동굴교회, 빽빽이 솟아있는 바위마다 어김없이 뚫린 동굴들로 이 지역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동굴교회를 대표하는 「괴뢰뫼」의 한 동굴에서 터키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짙은 황금빛으로 물든 저녁하늘을 배경삼아 촛불을 밝혀든 우리의 미사에는「초대받지 않은 손님들」도 호기심어린 눈망울을 굴리며 함께 했다. 낯선 방문객들의「이상한 의식」에 호기심이 발동한 터키의 어린이들, 그들의 재잘거림은 미사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했지만 우린 그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눌 수가 있었다.
초기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피난처「괴뢰뫼」는「너는 볼 수 없다」는 뜻. 화산폭발이후 수세기동안 풍화작용으로 부식한 이 바위속의 동굴들은 1세기경 처음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5세기부터 1천년이상 전성기를 누린 비잔틴제국 당시 이 지역의 그리스도교 문화는 가장 번성했으며 이미 4백개 이상의 동굴교회가 산재해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각 동굴벽과 천정에 남아있는 프레스코화들은 당시 융성했던 동굴교회의 신앙생활을 상상케 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기예수의 탄생과 성모마리아 세례자 요한으로부터의 세례, 그리스도의 변모, 가시관 쓰신 예수 등등, 대부분의 프레스코벽화들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 등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신앙과 열의를 그대로 전해주는 듯 했다.
카파도키아지역에서 순례자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현장, 대린쿠유(지하도시)를 찾았다. 모든 방문자들에게 경이감마저 불러일으키는「지하도시」는 8번째의 불가사이로 지적될 만큼 완벽한 생활터전의 모습.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지하도시는 이름그대로 커다란 공동체가 함께 생활하고 신앙을 키웠던 흔적을 곳곳에 남겨주었다.
더욱이 지하 7층에서 만난 교회는 뜨거웠던 그들의 신앙, 그 숨결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십자가 형태로 구축된 지하도시 교회에서 감동의 미사가 봉헌됐다. 제대로 의자도 갖추지 못한 지하교회는 한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감격 속에 순례자들은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몄다.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약 30여개의 지하도시가 산재해있다. 박해자들을 피해 보다 깊이 숨었던 신앙인들이었지만 오랜 세월의 은둔생활은 점차 그들을 지하 도시로 부터 떠나게 했다. 세 차례에 걸친 아랍의 침략으로 지하도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그리스도교인들이 떠난 지하도시는 수세기동안 묻혀 황폐해질 수 밖에 없었다.
기묘하게 생긴 원추형의 바위 틈새로 한결 같이 남아있는 동굴교회, 완벽하지만 폐허로 남아있는 지하도시 순례는 우리의 하루를 기쁨으로 충만케 했다. 그러나 무수한 신앙의 유산 앞에서 우리는 오늘, 터키복음화의 현실을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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