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성월이자 103위 순교성인 대축일을 맞았다. 매년 맞는 순교자 성월, 성인 대축일이지만 우리의 순교자 신심은 항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하다. 본보는 순교자 신심을 보다 구체적으로 독자들과 나누기위해 순교자 성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특별기획을 통해 본보는 순교자 연구를 비롯, 문학 작품이나 생활봉사로써 묵묵히 순교자의 삶을 현양하고 있는 인물, 단체를 탐방 순교자성월을 값있게 보내는데 작은 몫을 담당하고자 한다. <편집자 註>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평생을 교회사연구에 몸담아온 최석우 신부와 만났다.
특별이 순교자성월에 최 신부를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가 체계를 잡고 학문적 연구의 발판을 마련한 한국교회사에서 순교의 역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최신부의 연구를 통해 많은 순교자들이 이 시대, 이 땅에서 부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초기 박해시대와 순교자에 관한 문헌 및 자료수집과 연구 작업으로 84년 마침내 1백3위 순교성인 탄생의 밑거름이 된 최석우 신부.
그는 「교회사=최석우」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교회사에 관한한 독보적인존재다.
최석우 신부가 교회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된 것은 1954년 벨기에 루뱅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러나 그의 역사의식의 태동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일제하 일본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경 법정대학 법문학부 2학년이던 1944년 최석우 신부는 동료유학생들과 학도병으로 입대했으나 일본을 위해 희생ㆍ봉사할 수 없다는 저항의식으로 탈수를 감행했다.
『실패했을 경우의 결과보다는 일본을 위해 희생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최 신부는 당시를 회고한다. 이 사건은 최신부의 민족의식 내지 저항의식과 더불어 대쪽같이 꼿꼿한 성품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탈주에 성공한 최 신부는 비행장의 막노동자로 숨어 일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천신민고 끝에 귀국, 50년4월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54년 교회사를 공부하기 위한 유학길에 올라 루뱅대학을 거쳐 독일 본 대학에서「최초의 조선대목구 설정과 한국교회의 기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신부의 박사학위논문은 한국교회사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연구논문으로 평가되며 지금도 교회사연구에서「고전」처럼 인용되고 있다. 이때 이승훈의 편지가 최초로 발견ㆍ분석됐고 논문 뒤에 자료를 첨부시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도 크게 인정을 받았다.
최 신부 연배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최 신부는 일제하에서 피 끓는 청년시절을 보냈고 6ㆍ25을 겪었으며 이념의 대립과 혼한ㆍ격동의 시대를 보냈다 아울러 최 신부는 분단으로 인해 어머니와 두동생과 생이별하는 아픔까지도 맛보아야 했다.
전환기, 역사의 한 분기점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 결코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이 일들은 최신부가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역사를 알아야 오늘「제대로」살수 있다』는 의식으로 늘 깨어 역사를 연구하고 현재를 조명하게 하는 충분한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최신부의 교회사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집념은 64년 마침내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최석우 신부는 연구소의 필요성을『우선 병인박해 이후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를 수집ㆍ보존하기 위함이었고, 다음으로 연구진을 구성, 자료를 연구해 한국교회사의 확고한 틀을 다지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 교회사연구소는 발족이후 24년간 재정적 어려움과 인적자원부족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천주교회사에 시금석이 될「조선정감」「사학징의」등 중요한 자료를 발굴 번역해 보존하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단행본으로는 20집에 이르는「한국교회사 연구 자료집」과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등 교회관련도서, 각종 연구논문집 및 한국교회사 대사전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밖에도 75년부터 매달 발행한 정기간행물「교회와 역사」가 8월 현재 1백 59호에 이르렀고 설립 25주년 기념사업으로 한국 가톨릭 문화의 제반 특성을 파악ㆍ정리하는 「한국 가톨릭 문화사대계」의 간행을 서두르고 있다.
최 신부를 필두로 한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이와 같은 편찬사업 외에도 일반신자들의 교회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올바른 사관을 정립시키기 위한 강좌와 연구발표회 및 간담회, 세미나를 꾸준히 개최해 무지상태의 신자들이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해왔다.
한국교회사 연구소의 업적가운데 우리교회의 자랑인 순교자의 시복에 관한 노력은 간과할 수 없는 것.
시복은 정확하고 근거 있는 자료수집ㆍ정리가 없이는 불가능한데 우리나라의 79위ㆍ24위 순교자에 대한 시복이 이루어지기 까지 병인박해이후 자료수집에 앞장섰던 연구소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최석우 신부는 아직도 많은 무명의 순교자가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앞으로 꾸준히 기록을 찾고 자료를 수집해 무명 순교자를 밝혀내는 것이 후손의 임무』라 강조했다.
한국교회사의 기틀이 잡히고 연구소가 발전하게된 것을 한 개인의 업적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연구소가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학자적 열정과 소명을 다해 키워온 최 신부의 열정은 꼭 기억돼야할 것이다.
한편 최 신부는 역사가답게 현재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맵고 준렬한 비판과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내적 복음화를 통한 소금과 누룩의 역할보다는 외형적 과시와 숫자놀음에 급급한 교회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구원에서 멀어진다』고 강조하는 최 신부는 이런 현상이 역사의식의 부재에서 오며 이는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순교자에의 신심이 식어가는 것과 일맥상통함을 지적한다.
최 신부는 오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중 하나가「한국교회에서 가장 값지고 자랑스런 것은 순교의 전통이며 순교자 현양」이라 정리하고『순교의 의미가 증거에 있었던 것처럼 이 시대 신앙인은 말과 행실을 통해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최 신부는 우리문화에 대한 애정이 늘고 종교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세태를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교에 가해지는 크고 작은 도전과 위협을 극복하자면「토착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최 신부는『토착화는 순교자의 한국적인 삶과 죽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노사제로서의 조언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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