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자렛의 예수(마태2장19~23:루가2장39~40)
그 옛날 예언자 호세아는 (기원전 721년)예언서에서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배신하고 불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정생활에 빗대어 조명하였다.
후에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신부와 신랑의 관계로 설명하게 된다. 구약시대에 호세아는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강조하였고 신약시대에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보살핌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부적인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기시대에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예언자 호세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맡아 전했다『이스라엘아, 네가 어렸을 때 내가 너를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들을 이집트 땅에서 불러내었다』라고. 이것은 아직 우상숭배로 범죄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바탕으로 포도원을 가꾸게 하고 근심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만들어 주시려는 것이었다(호세2장16~17). 그러나 백성들은 이 사랑을 거절했다. 이 계획을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진짜로 이루시려는 것이다.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헤로데 일당이 죽었다. 이제 희망의 문이 열릴 때가 온 것이다. 주님의 천사가 다시 요셉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말하였다.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이스라엘 땅은 유대아인이었던 요셉에게는 하느님의 땅이다.
이 땅은 본래 하느님이 당신백성에게 준 성지이다. 마태오는 이 표현을 두 번 거듭해서 썼다. 아기 예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땅에서 자라나야만 했던 것이다. 예수의 이집트피난, 그리고 이집터에서의 귀환은 그 옛날하느님의 백성을 구출해낸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경우와 똑 같은 상황이다. 「주님은 미리 안에 있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이집트로 돌아가라 내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모두 죽었다. 모세는 자기아내와 자녀들을 나귀에 태워 이집트로 돌아갔다」(출애 4장19). 요셉이 받은 전갈의 말씀과 똑 같은 말이다.
다만 그 옛날에는 폭군 파라오가 모세의 생명을 노렸고 지금은 폭군 헤로데가 예수의 목숨을 노렸다. 피해자는 둘 다 하느님의 백성을 구해낼 분들이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왔었고 예수는 이집트로 도망갔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하느님의 명을 받아 하느님 백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 두 역사적사건은 구약과 신약이 평행적으로 대조되어 구약의 미완의 일들이 신약에서 완성됨을 가리키며 옛 이스라엘의 실패는 새 이스라엘의 완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사도들은 깨닫고 있었다.
헤로데가 죽은 후(기원전4년)유대아의 땅은 네 몫으로 나뉘어져 헤로데의 세 아들에게 분배되었다. 구중 유대아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은 해로데 아르켈라오가 분봉왕이었는데 그는 자기 아비 뺨치게 포악한 자였다. 요셉은 그를 피하여 북부지방 갈릴레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의 나자렛에 정착하였다.
나자렛이 있는 갈릴레아는 율법을 엄수하며 종교적인 국민임을 자부하는 유대아인들에게는 같은 유대아 땅이지만 반쯤 이교도이고 게으름뱅이, 속세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로 여기던 지방이다. 그래서 그들은「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오겠는가」(요한1장46)라고 경멸하고 있었다.
예수는 게네사렛이나 티베리아스, 벳사이다 등 존경받는 도시출신이 아니고 바로 경멸받는 나자렛 출신으로 사람들한테「나자렛의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나자렛인」또는 「나지릿인」은 삼손이 태어날 때 주님의천사가 예언한 말이다(판관13장5). 그리고 나자렛인은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일생동안 근엄한 생활을 하기로 맹세한 일종의 수도자들이었다. 예수는 바로「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는 것이었다. 수도자(나자렛인)는 세속사람들에게는 가련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삼손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불리웠던 것과 같이 하느님께 봉사하여 백성을 구할 사람들이다. 이 말을 쓰면서 마태오의 머리에는 아사야의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예쎄의 등걸에서 새가지가 돋아나리니 그 가지는 뿌리에서 번성하여 주님의 성령이 그 위에 머물리라(이사11장1). 새가지는 헤브레아말로「네제르」이다. 다윗가문에서 태어난 예수는 바로 이 새가지 네제르인 나자로인으로 불리어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분이다.
나자렛은 마리아와 요셉이 살던 고향동네이다.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예수는 아직 아기였고 12살이 될 때까지 이성가정은 무엇을 했는지 성서에는 없고 초대교회에 성서처럼 나돌던 외경(外經)「야고보의 원초복음서」에 자세한 이야기가 전해질뿐이다.
이 침묵의 기간 동안 예수는 무럭무럭 자랐고 지혜가 풍부해지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체력과 영성은 늘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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