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 믿음의 싹을 굳건히 틔운 우리 순교자의 신앙을 문학 작문 속에서 형상화시켜온 작가 신중신(다니엘)씨.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한국 천주교회 2백년의 역사를 그린 장편 서사시 「빛이여, 노래여」로 순교자현양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중신씨를 만났다.
84년 1월부터 2년 동안「경향잡지」에 게재되었던 이 장편서사시에서 그는 객관적인 한국천주교회 사료에 입각하여 이 땅의 신앙인들의 모습을 장렬하게 그려갔다.
물질문명이 팽배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2백년전 왕조시대를 살다간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한 신중신씨는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줄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보편적인 공감은 문학성과 사실(史實)과의 조화로 불러일으켜진다는 확신과 종교적인 열망으로 7개월 동안 집필을 준비했다.
『교회의 역사적사실과 섞여진 형상화된 문학세계는 재창조된 현실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의미가 된다』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신앙의 문학 작품화라는 영역에 커다란 포석을 놓았다.
한국교회가 2백주년을 맞아 순교성인의 전기들과 사화집들이 많이 출간됐지만 주로 딱딱한 산문형식의 글들로 일반 신자들이 가깝게 느끼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문학적 표현에 실린 순교성인의 역사를 통해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다분히 신앙적인 그의 욕구가 장편 서사시를 낳게 한 것.
작가 신중신씨가 한국교회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초대교회 순교자의 전기를 집필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초대 한국교회의 커다란 맥을 형성하는 정약종의 가계를 공부하면서 그는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린 우리교회의 신비스러운 역사에 매료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샤를르 달레가 지은「한국 천주교회사」를 비롯, 교회사에 관한 서적을 중심으로 그 당시의 사회적ㆍ문화적배경과 신앙을 공부하며 곳곳의 성지를 쫓아다녔다.
특히 신중신씨는 도드라진 역사 뒤에서 숨은 힘이 됐던 무명 순교자의 삶에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그의 시 전편에는 베옷을 입고 이리저리 뒹굴며 굶주리고 오욕을 감수해야 했던 숱한 사람들의 모습이「민초」라는 그의 시어로 표현되고 있다.
「단비를 얻지 못한 한반도 굳은 벌을 질펀히 맨발로 타고 수풀은 시들어 이냥 꺾어질라 마른 이씨 조선 하늘엔 까마귀 떼 어지러이 울어대고 민초들이 서걱대며 사는 마을 초옥(草屋)에는 때 없이 시름만 활활 타오른다」이 시를 쓰면서 아쉬운 점은 통사(通史)의 성격이 너무 강해 문학적인 순수성이 약해졌다는 점이라고 밝힌 신중신씨는『허구와 꿈이 넉넉히 뿌려진 문학 작품이 나의 작품을 시발점으로 나와 주기를』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동료 문인들에게 교회사책을 선물할 정도이다.
그는 장편 서사시를 다 쓰고 난후의 느낌에 대해 순교의 힘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또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목숨을 내놓았다는 것은 결국 민초들의 피멍울진 삶이 배출구름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인간적인 느낌도 적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가장 신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가톨릭문학관은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엔도우슈사꼬의 「침묵」이나 그래엄 그린의「권력과 영광」등 일련의 가톨리시즘을 기초로 하는 문학이 그러하듯이 인간적인 것 자체에서 신앙적 역량을 가진 문학성을 발견한다. 멕시코 공산치하에서의 박해를 그린 작품「권력과 영광」에서 등장하는 사제상-비겁하고 용기 없는 그러나 인간적이고 회개할 줄 아는-과 일본 무사시대에 가해진 박해를 다룬「침묵」에서 그려지는 사제상은 백성을 위해 교회와 하느님의 껍질을 부정할 수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신풍신씨는 그런 맥락에서 신유박해 때 교회를 버리고 떠났다 다시 돌아와 순교한 사제 주문모를 바라보았다.
『우리겨레 만큼 종교적인 민족은 드뭅니다. 불교도 그러했고 우리 천주교회도 순교로써 뿌리를 내렸습니다』라고 말하는 신중신씨는 신앙적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이 전무한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71년 예비자교리를 배운 신중신씨는 가톨릭 교리전체가 인간적인 것에 감명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문학적 감성과 맞물려 가장 인간적인 것들 속에서 신앙적인 것들을 찾고자한 그는 한동안 냉담기를 보내기도 했다.
7년간의 냉담 중에도 어렴풋하게 하느님의 이끄심을 느꼈던 그는 고백성사를 통해 다시 평신도로서의 삶의 자리를 굳혀 나갔다.
결국『삶에서 순교자의 죽음을 드러내고 그 의미를 작용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라고 말한 그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발휘하면서 기쁘게 사는 삶의 태도를 밝혔다.
신앙적 열망을 계속 글로 써나가고 있는 작가신중신씨는 현재 신앙수필집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평신도가 이웃과 함께 살면서 잔잔하게 부딪히고 느끼는 삶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한 이 수필집은 12월경에 출판될 예정이다.
또한 그는 교회사를 장식하는 사건 중에서 문학적 형상화를 위한 소재로 유방제신부와 권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적인 사랑과 고뇌ㆍ승화된 순교로 이어지는 이 테마를 시극의 형태로 그려나갈 계획이다.
교회문제에 대해서 문화전반이 소홀하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신중신씨는 교회가 토착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교회출판물을 보면 90%이상이 번역물이며 출판서적의 수도 개신교에 비해 훨씬 밑돈다고 설명했다.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고 커다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분야는 특히 문화 분야이다.
그는 교회가 복음을 전파 하는데 있어서 행적적인 측면의 지원보다는 음악ㆍ미술ㆍ문학 등 문화의식을 높이는 방향의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월의 바람 속에서 순교성인들의 숨결을 느끼는 시인 신중신씨는『문화와종교가 융합된 가톨릭문화가 정립되고 퍼져나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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