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8월 5일
양로원의 엘리자가 중병에 걸렸다. 양로원에 피신해 있던 10명과 수녀들의 여자아이들 몇명이 혼란에 빠지다. 10시에 코스트 신부가 부재중이라 내가 수녀원에 가서 2명에게 세례를, 4명에게 종부성사를 주다.
그야말로 가슴이 터지도록 슬픈일이다. 아침나절 병에 걸린 청원자 수녀 한명이 오후 5시에 숨을 거두다. 그녀를 간호하러온 그녀의 어머니도 콜레라에 걸려 저녁에 성사를 받았다.
8월 27일
샤르즈뵈프 신부에게 프랑스말 교습을 요청했던 외부협관 윤치호가 신부에게 이미 시작한 공부(4~5차례)를 불가항력을 이유로 중단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오다. 이곳을 자주 드나듦으로써 자신의 체면이 손상되고 정부의 체면이 손상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어떤 케케묵은 관리 때문은 아닌지?
8월 28일
두세, 로, 베르모렐 신부들이 오전 중에 도착하여 11시에 함께 점심을 들다. 내가 시간에 맞춰 알현을 하러갈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내가 집을 나선 것은 12시25분, 통역관 이베드로가 우리보다 몇분 앞서 떠나다. 왕의 접견실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대궐의 상태는 별로 잘보존되어 있지 못하다. 각각 2명의 파수꾼들이 무기를 든채 서있는 대문 4~5곳을 지나서야 예정된 구내에 도착하다. 30분쯤 기다린 뒤에 알현실로 안내되다. 두개의 문을 더 지나니 그때야말로 전하들, 즉 왕과 왕세자 앞이다. 우리는 모자를 벗고 왕앞으로 나아가 왕에게 3번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다시 왕세자 앞에서도 똑같이 3번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르페브르 씨가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니 통역관이 즉시 통역을 한다. 이어 전하와 나 사이에 직접 대화가 오가다.『이제야 문안하오니 과연 늦었읍니다. 오늘 처음으로 전하께 인사를 드리게되어 영광입니다.』『오! 주교님은 우리말을 잘 하시는군요. 나는 오래전부터 주교님을 알고 있었어요. 내가 주교님께 특별한 호의로써 이번 알현의 기회를 드린 것은 주교님께서 목적하시는 바가 오로지 우리 조선의 이익에 두고 있기때문입니다』그말에 대해 전하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다.『감사무지하외다』왕은 『얼마나 오래전부터 조선에 있었는지요?』하고 묻는다.『16년전부터 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나라의 법률이 우리가 여기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몰래 숨어있어야했읍니다』『나도 잘알고있소. 더구나 천주교는 내가 직접 이 나라를 통치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박해를 받지않았소. 그점에 있어서는 나는 정말 아무일도 하지 않았소』그후 왕은 내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조선왕국의 이익을 위해 나의 힘자라는대로 도와주겠느냐고 묻는다.『전하, 제가 무슨 힘이 있고 무슨 세력이 있겠읍니까? 저는 단지 선교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살고 조선에서 죽게되어있는 프랑스인입니다. 그러니 전하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성심껏 일하겠읍니다』이렇듯 분명히 선의를 표명한 것이 왕을 기쁘게 해준 모양인지 왕은 다시 덧붙여 말한다.『나도 잘 알고있소. 그러기에 무슨 중대한 일이 생기면 주교님의 선의와 헌신에 호소하려하오』르페브르 씨의 권유에 따라 우리는 왕 앞을 물러나와 오른쪽의 왕세자에게로 가 인사를 드렸다. 왕세자는 그의 아버지가 한 말을 되풀이 한다. 내쪽에서도 거의 같은 말로 같은 확신을 드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나오다. 알현실은 대단히 넓으며 계단이 있는 남쪽으로 향해있고 일부러 반쯤 열어놓은 몇군데의 벽면사이로 궁녀복을 입은 여자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9월 8일
에스텔 수녀는 오늘 아침에 노자성체를 모시고부터 좀 나아진 모습이다. 거룩한 동정성모께서 이 환자의 치유를 위한 어린이들 및 다른 모든 이들의 열렬한 기도를 들어주신 모양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