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예수의 족보(마태1장-117, 루가3장23-3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도들이 복음선포 시대에 하느님나라의 선포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뜻에서 제일 먼저 쓰여 진 마르코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준비작업, 예수의 세례, 광야에서의 시련극복으로 그 복음서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 이전의 이야기들을 유년 시대 복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루가는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서른 살 가량 되셨다고 했고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리기 위하여 그분의 족보를 소개한다. 서른 살의 유대아 백성들 관념에서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의 나이이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복음서를 읽는데 일 년 중 예수성탄전날 복음서를 들을 때 가장 무미스럽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그 내용의 복음서는 바로 예수의 족보를 읽는데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께 이르기까지 42명의 생경스러운 이름들이 나열되고 누구는 누구를 낳았고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족보는 상당히 중요하다. 우선 마태오복음서는「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족보」라는 말은 우리 방식으로 번역된 말이고 본뜻은 출생내력이란 뜻이다. 이 말은 창세기란 말과 같은 말이다. 창세기도 본뜻은 세상의 출생내력이란 뜻이다. 구약성서가 천지의 출생내력으로 시작한다면 신약성서는 그 세상을 출생케 한「말씀」의 출생내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력은 예수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다윗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구세주 메시아의 대명사적 호칭이었고 아브라함은 인류의 아버지라는 구약성서 사상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인류를 대표하여 인류전체의 운명을 한 몸에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다.
복음서는 여기서 하느님의 약속이 야속하지 않다는 것을 굳이 증명하여 보이여고 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메시아가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창세12장3, 22장18), 다윗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셨다(사무후7장 12, 시편132장11) 그런데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그들의 민족은 산산조각이 낫고 로마제국의 식민멍에 밑에 신음하며 다윗가문의 세력은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메시아는 이같이 메마른 땅에서 돋아났다.
사도교회시대의 복음전파자들은 저들이 전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이와 같은 분이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알려주어야 했다. 그래서 마태오는 자기복음서를 첫머리에 예수의족보로 시작했고 루가는 예수의 공생활시작에 놓았다. 마태오와 루가는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가 바로 다윗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아들임을 계보를 통하여 명시하였고 루가는 이에 덧붙여 하느님의 아들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은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적으로 타당한 계보를 명시하기위하여 마태오는「아브라함은 이 사악을 낳았고…낳았고…」하다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다라고 하였고 루가는 그는 요셉의 아들이며(법적으로)요셉은 엘리의 아들이며…등등…아담,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께 이른다라고 하여 마태오와 루가 둘 다 예수가 요셉을 통하여 직계로 아브라함, 아담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서와 루가복음서는 예수의 족보가 다르게 나타나 있다. 우선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마태오)과 엘리로 서로 다르다. 이것은 헤브레아 민족을 말하는 셈족의 표현 때문이고 복음서가 의도하는바가 적확한 예수의 조상계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세사적측면에서 계보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셈족의 표현은 몇 대를 지났어도 같은 계보에 속하면 낳았다는 표현과 아무개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그러니 요셉의 조상계열에 야곱과 엘리가 있었으면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요셉을 낳았다. 또는 아무개의 아들 요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거시다. 그다음 마태오의 족보와 루가의 족보는 조상이름들이 모두 다르다. 이것은 성서학자들의 해석상 골치 거리가 되는 것이지만 마태오는 역대기 상권3장19절부터 24절까지를 참고하여 예수의 족보를 만들었고 루가는 즈가리야서 12장12-13절을 참고하였다. 물론 이름이 같은 것은 아니다. 마태오와 루가의 족보가 다른 것은 각기 책을 쓰는 관점이 다르고 따라서 자기에게 필요한 인물들을 열거하였기 때문이다. 마태오는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3구분의 시대를 돋보이게 하여 42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것은 유대아인들을 대상으로 쓴 복음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돋보이게 하려고 법통을 중요시하였고 루가는 이교도와 온 세상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썼기 때문에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중요시하여 마리아의 혈통을 따라 썼다고 한다. 하여튼 요셉과 마리아는 두 분 다 다윗의 가문이며 아브라함의 후예임에는 틀림없다.
두 복음서는 조상의 수를 헤아리는 특징이 묵시문학적이라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마태오는 14라는 수의 조상을 한조로 묶어 3조를 게시하는데 그것은 예수의 족보가 다윗에 중심이 주어져있고 다윗의 헤브레아 글자DVD는 그들이 매 글자마다 수를 표시한데 따르면 D=4,V=6이다. 그래서 D+V+D는 4+6+4=14가 된다. 묵시문학서 에녹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시간은 7주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것은 야곱에서 솔로몬까지가 2주간 솔로몬에서 유페시대까지가 2주간, 유페시대부터「칼의 시간」까지가 2주간이다. 마태오족보에 따르면 예수그리스도는 마지막 주간 즉 일곱 번째 주간 초에 태어났다. 이것은 6주말에 해당한다. 마태오의 조구성이 3×14 인 것은 다윗의 전통적인 족보가 (역대상 2장10-13) 3명의 성조를 수장으로 14명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다. 루가는 11×7=77명의 조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묵시문학 에즈라 4서에 따르면 세상은 7주간을 한 주기로 상징하고 모두 두주기로 나눈다. 그래서 예수는 제12주초에 태어났다. 하여튼 예수의 탄생으로 새 세상이 전개되고 새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족보가 우리에게 주는 훈시적인 내용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하느님의 약속은 견디기 어려운 기나긴 밤이 지나고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40년 동안 모진박해를 받으며 자유해방을 기다리다가 지친교우가 자유남한서 방문한 자기오빠 주교를 보고 천당이 어디 있느냐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쏘아붙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래도 언젠가는 해방이 올 것이라는 말씀을 남겼다고 한다. 메시아는 결국 오고야 만다. 둘째 예수의 족보 속에는 죄녀로 이름난 여인 넷이 끼어있다. 예수께서는 완전무결한 혈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죄와 이교도의 피를 받아 태어나셨다. 죄인을 구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