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십년 전 어느 날인가 사병으로 근무하던 시절 참으로 오랜만에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을 때. 큰 기쁨 속에서 무릎 꿇고 주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다.
『주님! 당신을 뵙기 위해 정말 어렵게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이렇게 말씀드리며 주님의 위로를 청했었다.
그러나 그 후 비 오던 어느 주일날 3시간동안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전방에서 나왔다는 어느 사병신자를 대했을 때 내가 청한 위로가 얼마나 부끄러웠던 것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신부님의 로만칼라 한번보고 미사한번 드리고 성체한번 모시기 위해 저렇게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를 보며 이다음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군종신부로서 저런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제대를 하고 나는 그런 생각쯤 까마득히 잊고 생활했지만 주님은 기억하시어 나를 군사목에로 부르셨을 때 기쁨보다는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응답을 했다.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숨긴 채 환송하는 형제자매들에게 기쁜 얼굴을 보이며 의젓하게(?)떠나왔고 최선을 다해보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짐일 뿐…. 십년 만에 다시 입은 군복과 땀 흘리는 훈련은 많은 고통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힘들고 지루한 훈련들. 신부가 아닌 사관후보생, 차라리 그저 사관후보생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신부후보생」이라고 부르는 통에 우리는 때아니게 새로운 서품을 앞둔 부제가 되고 말았다. 이 훈련이 끝나는 날이 새 신부되는 날이라고 서로 농담으로 위로하며 지냈지만 그동안 사제로서 받았던 존경과 사랑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들이었다.
『야! 60번 후보생 그렇게밖에 할 수 없나!』
『넷! 60번 홍승권후보생 시정 하겠습니다』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번호를 불릴 때가 더많은 생활을 하며 그동안 내 이름 조차 부르기 어려워했던 신자들을 생각했다.
아! 내가 사제이기에 받은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사제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감사도 잠깐, 60번 홍승권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동안 몸에 배인 교만과 권위가 너무 엄청나 허용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때때로 신자라고 하는 교육관들로부터 꾸중을 들으며 지금 나는 남에게 충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충고 받는 사람임을 새삼 느끼기에 또 다른 쇄신과 변화가 필요했다.
때론 사제직에 대한 흔들림까지 체험하면서 근근히피교육자 생활을 마치고 임관과 동시에 군종신부로 서품되었다.
이제 나는 피교육자가 아니라 신부다. 군종신부다라고 외치며 훈련소를 나설 때 열심히 잘하리라는 인간적인생각은 또 얼마나 착각이었던가?
주님이 한 순간이라도 돌보아주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조물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군종신부로 소임을 맡아 현재 있는 부대로 부임한지 이제 한 달. 사병들과 만나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를 경계한다. 이벽을 어떻게 「뻥」뚫어볼 수 없을까? 마음만 급하지 제대로 되지는 일은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병들을 위하여 불리운 나의 특수사목에 걸맞게 그들을 만나려 하지만 무작정은 되지를 않는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만 생각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다.
개신교신자인 지휘관에게도 열심히 고개를 숙여본다. 그러다 간만에 보기 드문 우리 신자 지휘관을 만나면 예전의 버릇대로 뻣뻣해 지려는 목덜미를 꺾으며『더욱 많은 도움을 부탁 드립니다』하고 고개를 숙인다.
사병들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내 안 생긴 얼굴을 봐 달라는게 아니라 우리 사병들 종교 활동 잘해서 평화롭고 기쁘게 무사히 군복무를 마칠 수 있도록 고개를 숙인다.
『새로 전입 온 군종장교 홍승권입니다. 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 많은 도움바랍니다.』그때마다『신부님걱정마세요. 저희들은 일반신자처럼 교회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군 특유의 순명과 충성심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격려하는 군인신자들의 고운 마음이 나를 더욱 고개 숙이게 한다.
『그렇지, 옛날 읽었던「상처받은 치유자」의 삶이 나의 삶이지』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내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서로 메꾸어 이가 빠진 동그라미를 둥글게 하는 것이 삶이다. 하는 주님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작은 소리의 시도를 바쳐본다.
『주님! 저의 발걸음에 함께 하시고 저의 모든 지체들을 이끌어 주소서. 하여 그들의 눈빛만 보아도 아픔을 알고 저의 손끝에서도 위로를 나눌 수 있게 하소서』
지친 몸을 이끌고 사제관책상에 앉으니 가을의 한기가 묻어난다. 감사로 오늘을 마감하고 내일은 우리부대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신병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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