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본당에 부임한지 한달 10일 만에 6ㆍ25가 발발했다. 6월 28일에는 현재추기경 김수환 신학생을 포함한 5~6명의 신학생이 내게 피난을 오기도 했다. 신학생들은 1층에서 자고 나는 2층에서 자고 있는데 한 밤10시쯤 됐을까 갑자기 시가지 쪽이 해보다 더 밝아졌다. 얼른 뛰어나가 보니 용산일대에 번개 빛이 일시에 비춘 것처럼 환해지면서「쾅」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전기, 수도도 끊어졌다. 유명한「한강 인도교폭파」였다. 그 소리에 잠을 깬 신학생들은「우리는 나가야겠다」며 집을 떠났다.
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한강을 건너겠다고 시내에서 나온 사람들 때문에 용산일대가 메어지고 있었다. 어른, 아이, 노인들 할 것 없이 꼼짝달싹 못하고 빽빽이 들어차 길을 걸어 간다기 보다는 그대로 뒷사람에게 밀려가는 모습이었다.
남들 피난 가는데 같이 가야 한다는 식복사의 호들갑에 일단은 나도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 거리에는 한강을 건너려는 수많은 군중을 헤치고 다시 되돌아오는 사람도 꽤 있었다. 왜 돌아오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철교가 폭파된 것을 보고 체념하고 그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용산바닥에는『자동차로 나간 사람은 폭파 때 다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이튿날 답답한 마음을 풀길이 없어 용산 신학교로 찾아갔다. 실제 나의 의도는 전쟁이 터졌으니 죽더라도 신부끼리 모여 있어야 할 것 같아 그 의향을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교장신부를 비롯, 5명의 신부가 남아있었다. 용산신학교는 뜻밖에도 별로 어수선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교장신부는『전쟁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예견했다. 나는 은근히『신부님 같이 지냅시다』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튿날은 식복사를 통해 인근본당에 있는 노인신부인 정 신부에게 같이 지낼 것을 제안했으나 그 신부 역시 그럴 의향은 없는 것 같았다. 벌써 용산길목에는「빨갱이」들이 책상을 갖다놓고 지나가는 이를 조사하고 있었다. UN 군은 서울에 드문드문 폭격을 끊이지 않았다.
7월 10일에는 서울시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수녀ㆍ신부를 붙잡아「인치형(引致刑)」을 시작했다. 이억만리 이국땅에서 복음전파의 일념으로 헌신해오던 그분들이 당한 고초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시련이었을 것이다. 공산당들은 불란서신부, 교황대사 등을 포함, 일부는 붙잡아서 평양으로 끌고 올라가 버렸다.
점차 사태가 험악해져 가는데 7월 11일에는 신천출신으로 약현본당 교우였던 「구교철」군이 내게 찾아왔다. 구군은 어제저녁 불란서신부ㆍ수녀가 붙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여기는 위험하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손을 이끌었다. 나는 구군의 제안에 실로 반갑고도 고마움을 느꼈다. 6ㆍ25가 터졌으나 본당교우들 중에는 주임신부의 신변에 대해 신경을 써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고 신학교 신부와ㆍ정 신부 역시 마찬가지 였던 터라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만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상대가 있던 서대문근처에 살았던 교철군의 집은 무척 가난했다. 나는 전쟁이 나자마자 당시 경향신문사에 있던 구상시인의 충고를 듣고 사놓았던 쌀2가마 중 일부를 가지고 가서 구군의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꼬박 보름을 거기서 묵고는 약현본당의 선 신부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7월 23일 찾아간 선 신부에게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내게「체포령」이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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