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로써 시작되고 죽음으로써 끝나는 예수의 공생활은 전도활동으로 특징지어진다.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비유로써 그 나라의 진리를 계시하고 권위 있게 가르치며 한편으로 자기 주변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동체를 형성한다.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과 폭넓은 교제를 하면서도 몇몇 제자들을 곁에 두고 그들과 동고동락의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특별히 그들을 교육하고 자기의 사명에 동참시킨다. 예수의 가르침이 절대적 권위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분의 생활태도도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종교, 가정, 사회, 정치와 관련하여 그분이 취하는 생활태도는 자유로운 삶의 양식이다. 이 자유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폭넓은 교제 중에 그분이 보여주는 태도는 그분이 전적으로 자유로운 분임을 드러낸다. 권위와 자유는 그분의 공생활을 특징짓는 두 요소이면서 그분의 신분을 시사해주는 것이기도 하다(CHㆍ뒤곡). 연대성, 개방성, 위타성 따위로 그 윤곽이 드러나는 예수의 공생활은 세례, 전도활동, 자유로운 생활로 나뉘어 고찰될 수 있겠다.
세례
하느님의 아들이 정화예식을 받았다는 사실과 세례에 대한 입양(入養)주의적 해석 때문에 초대교회는 예수의 세례를 보도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해설을 곁들어 예수에 대한 복음선포의 시작으로 세례를 묘사한다. 마르꼬에는 하늘이 열림, 성령의 임하심, 요르단강, 하늘로부터의 소리 등이 묘사되었다. 열린 하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허물어지고 은총의 새 시대가 개시하였음을 뜻한다. 요르단강과 성령의 강림은 메시아 공동체의 탄생을 시사한다.
하늘로부터의 음성은 하느님의아들이 야훼의 종(이사 42, 1)으로서 맡은 사명을 선포한다. 이 아들은 그분을 파견하는 분 곧 아버지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죄인을 틈바구니에 섞여있는 겸손한 종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지만 하느님 아버지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는 새 창조 새 해방 곧 새 하느님 백성의 시작이다.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에 첨부되어있는 세례자와의 대화에 의하면, 세례 받으려는 예수의 뜻은『하느님이 원하시는 모든 일(곧 정의)이 이루어지도록 하기위한 것』이다 정의의 실현, 종말론적 구원은 악에 대한 승리, 죄로부터의 정화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 때문에 세례 받는다. 그래서 그 세례는 빠스카와 관련되어있다(루가 12, 49~50).요르단의 세례로 시작된 성령강림은 그 세례의 완성된 빠스카 사건 이후에 본격화될 것인데 빠스카는 아들이 종으로서의 자기 사명을 완수할 때이다.
예수는 야훼의 종으로서 백성의 죄를 짊어질 분이다. 성부를 충만히 계시함으로써 또한 자기 목숨을 바침으로써 아들임을 드러낼 분이다. 이 아들 위에 성령이 부어져서 새 창조가 시작되며 죄의 속박에서 해방된 백성에게 의로움이 주어질 것이다. 세례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인데 피의 세례로 완성될 것이다. 세례는 죄 많은 백성과의 깊은 연대안에 있는 아들, 그 연대성 때문에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사명을 수행할 아들의 운명을 나타낸다. 그 연대성은 아버지에 대한 순종의 결과이다.
전도활동
이 활동은 하늘나라의 설교와 그 나라를 위한 메시아 공동체의 설립을 근간으로 하여 전개되고 권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늘나라에 관해 권위 있게 선포하고 그 나라에 봉사하게 될 공동체를 권위로써 설립 한다. 예수는 율법학자들처럼 해설자가 아니라 권위 있게 가르치어 법의 창시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인간의 전통이 하느님에게서 연유한다는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런 의식의 규정들은 인간들을 위한 것이므로 인간을 위주로 하여 판단해야함을 단언한다.<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므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완성하러 왔다』(마태5, 17). 권위 있는 말씀이 율법을 완성한다. 완성이란 준수하고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을 떠받치는 근원에서 율법을 받아들일 때 율법은 완성된다. 예수는 율법의 근원이고 완성이다. 어떠한 전통에도 의거 하지 않는 그분의 언행의 규범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태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에 있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은 심판의 척도가 된다(마르8, 38).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형들도 굴복 하는구나』(마르1, 27),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한 예수에 대해 이러한 반응을 보인 군중은 말씀의 권위로써 악의 세력을 제압하는 것을 보고 놀랬다. 권위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예수의 권위는 획득된 것이 아니라 몸소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권위는 죄보다 더욱 신비로운 영역에까지 미친다. 중풍병자에게『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2, 5)라고 선언하면서 죄를 사해주는 권한을 입증한다.『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그분은 하느님의 권위로써 용서한다.
메시아의 공동체
제자들을 선택하고 교육하는 데에서도 그분의 권위가 뚜렷이 행사된다. 마치 야훼께서 한 백성을 선택하고 그들과 계약을 체결하여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듯이 예수도 전권을 갖고 사람들을 불러 자기운명에 전적으로 동참하도록 준비시킨다.『나를 따르라』는 명령은 가족, 재산, 직업 모두를 포기할 만큼 절대적 추종을 요구한다. 어떤 규범이나 이념의 준수가 아니라 예수 자신과의 일치를 위해 요구되는 포기이고 추종이다. 이 때문에 그 공동체는 그분과 함께 생활하고 같은 운명을 나누어야 한다. 예수의 사명과 권한을 나누는 공동체이다(마르6, 13). 사명과 권한에 있어서 예수와 일치되어야 하므로 그들은 그분의 운명에 전적으로 동참해야한다(마태10, 40).사명수행에 대비하여 특수교육도 받는다(마태13, 36).
예수는 파견된 분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는 분이기도 하다:『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17, 18:20, 20).파견은 권한과 사명에 있어 예수와 제자들을 한데 묶는 개념이고, 제자들에 대해 예수가 행사하는 권위와 주도권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성부께서 성자를 파견하신 똑같은 목적으로 예수는 그들을 파견한다. 파견하는 분과 파견되는 자는 권한과 사명에 있어서 일치되는데 그 완전한 일치를 위하여 같은 삶과 운명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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