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아벨라를 순례하였다. 16세기 스페인의 신비ㆍ사상가이기도 한 성녀 데레사의 성당 한곳만으로도 이곳에온 목적은 충분히 달성 된 것 같았다. 로마군(軍)의 침임을 막기 위해 구축한 중세의 고성들에 둘러싸인 이 시골 도시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멀리서 보니 더욱 아름다웠다.
스위스를 거쳐 8월 1일 로마의 레오날드 다 빈 공항에 내렸다. 성도(聖都) 로마!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을 맨 먼저 순례 하였는데,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니 뜨거운 햇빛아래 더위에 허덕이던 나그네들에게 그곳은 마치 냉방장치를 한곳같이 시원해서 우선 살 것 같았다 더위가 가시고 정신을 차리니 또 그 웅대성과 예술성에 대한 경위와 감탄의 연발들이었다. 미켈란젤로의「피에타 」앞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었다. 대성당 중에서도 대성당인 이 베드로대성당의 내부를 한 바퀴 돌아 밖으로나 오니 호위병들의 멋진 의상이 여간 현대적이었는데 그것이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이라 했다.
아씨시에 갔다. 우리를 그 곳으로 안내하면서 교민 대학생 안내자는 약간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이 길이 바로 프란치스꼬 성인이 로마로 가신 길입니다」라고 되풀이해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나는 성당의 벽화, 성 프란치스꼬와 새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성당 앞 광장의 노천 시장에서 안내자의 눈을 피하여(그는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백의 색 크형의 원피스를 한 벌 샀다. 그것을 입고 아씨시를, 청빈과 겸손과 순명의 성 프란체스꼬를 생각하리라고…. 가시 없는 장미의 묵주를 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로마의 순례는 이번 여행 중 제일 길었으며, 모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시내의 유적, 사대(四大)성당, 카타콤바를 순례하고, 나폴리ㆍ소렌토까지 다녀왔다. 베스비오산(山) 기슭의 폼페이를 관광하고 나니 10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고대와 현대가 현존하는 도시 로마의 거리는 지저분하였지만 폭군 네로가 있고 시저가 있고. 황제들의 영화(榮華)도 부서진 꼴로 세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알현도 빼놓을 수는 없다. 비록 그분과의 악수는 못했을지라도 지척 간에 온화한 성하의 얼굴을 대하고보니 그것만으로도 한국에 돌아가면 큰 이야기꺼리였다.
이스라엘 입국은 까다로웠다. 개인별로 짐을 조사하고 질문을 하는 등. 그동안의 여행에서 불어난 짐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우리 순례단은 불안에 휩싸였으나, 어찌 예수의 수난에 비할 수 있었을까.
8월 5일, 성지 예루살렘의 밤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자다가 문득 눈을 뜨니 이스라엘의 어느 여군같이 날카로운 초생달이 방안을 드려다 보고 있어 깜짝 놀랬다.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안 신부님을 이곳에서 만났는데 그 분이 계신「죽음의 성당」마당에는 엷은 하늘색의 청순한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갈색의 허름한 프란체스칸 수도복에 싸인 그 분은 우리를「비아 도로로사」로 데리고 가시고 미사도 두 번이나 올려 주셨다. 『내가 드린 십자가나 묵주만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을 이곳에서 얻어가지고 귀국 하십시오』라고 되풀이하여 당부하셨다.
그간의 순례에서 쌓인 심신의 피로는 그런 식의 그분의 강론으로 말끔히 가시는 것만 같았다.
골고타의 언덕 올리브 동산 박식한 안내자의 성서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순례단은 황야(荒野)를 달리고, 양떼와 그들의 길도 보고, 베들레헴ㆍ나자렛 마을ㆍ가나안에 갔다. 「젖과 꿀이 흐르는 도시」예리고, 유혹의 산도보고 드디어 8월 7일 갈릴래아 호수에 도달했다. 그것은 호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였다 갈릴래아 지방은 한마디로 풍요의 땅이었다. 무성한 수목(樹木) 종료나무들. 사막의 오아시스, 갈릴래아는 그런 곳이었다. 예수가 이지방의 각지를 다니면서 회당이나 나무 밑, 혹은 호반의 바위에 앉아서 설교한 갈릴래아는 생명력이 넘친 곳이 있다. 베드로 고기를 먹고 나서 유람선을 타고 갈릴래아의 호수를 가면서 나는 폭풍의 호수위를 걸어간 예수를 생각하였다. 어망을 던지는 베드로ㆍ안드레아ㆍ요한ㆍ야고보등의 어부들도. 예수가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한 언덕을 보고 진복팔단 성당의 정원, 거대한 태산목(泰山木) 그늘에 앉아, 나는 성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
우리가 머문 티베우스란 곳은 부자들의 마을이어서 예수는 그곳에 안 오셨다고한다. 그리스도의 발자국이 없는 그곳. 그러나 나는 저녁식사 후 곧 호텔을 나와 어둠이 내린 갈릴래아의 호안으로 내려갔다. 호수가의 돌 위에 앉아 후끈거리는 발을 그물에 담갔다. 파도가 조용히 밀려와 부딪치고 내가 앉은 돌은 따스했다.
그 돌에 등을 기대고 앉으니 한없이 편해 밤이 새도록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앉아있고만 싶었다.
그날 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별을 보았다. 그것은 호화로운 별의 군단은 아니었으며 대여섯개의 별들만이 정연(整然)히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 갈릴래아의 별들아! 너희들이 거기 있었구나. 그렇다. 너희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예수의 모든 것을. 그리고 또한 우리들의 모든 것을.
그 별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엉킨 마음에 그들의 하나하나가 위엄과 압도적인 날카로움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도 같았다.
다음날 순례단은 마지막코스인 이집트의 사하라사막을 달렸다. 아기예수의 피난길, 사하라사막은 한없이 멀고 뜨거웠다. 아기예수께서 피난했던 곳에도 가고 피라미드ㆍ스핑크스 구경도 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를 헤맬 때도 갈릴래아의 그 별들은 그 밤과 똑같이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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