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날 버스정류장 옆에서 세일이 되어 팔리고 있는 두마리의 용이 장식된 쌍용 은가락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얼마 전만 해도 나는 그놈의 쌍용 가락지 때문에 무척이나 속상해 했었기 때문이다. 『이 신부, 소식들었나? 요즘 쌍용 은가락지 때문에 시중에 은값이 세배나 뛰어 올랐대. 그걸 끼면 장수한다고 소문이 나서 아예 은이 없어질 정도래』.
친구 신부의 당혹한 목소리에도 처음에는『뭐, 설마 그럴라구』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런데 한손에 묵주 반지와 함께 그놈의 쌍용 반지를 나란히 끼고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 채 버젓이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신자들을 보자 나는 그제서야『아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둘이 아니라 그 대열이 줄줄이 이어져 올때는 망치로 머리라도 맞은 듯,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정성스레 쌓은 공든탑이 무너지는 아픔이랄까. 나는 분노와 실망, 안타까움으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으며 그들 앞에 서있는 자신이 왜 그렇게 초라하게만 여겨지는지 한없이 움츠려드는 자신을 달랠 수가 없었다.
수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길 잃은 양떼들을 바라보시며 측은해하셨던 그분의 심정을 헤아리며 나는 안타깝게 젖은 목소리로 『이 쌍용 은가락지가 미신인 이유는 첫째, 가락지에 용이 새겨져있고 둘째, 용해에 만들어 껴야한다고 주장하고 셋째, 시집간 맏딸이 해주어야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하고 가르쳤지만 왠지 커다란 공허함만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거기에가『아이고, 신부님 뭐 그걸 가지고 그렇게 노하십니까? 남들이 다 하는데 반지 하나 해줄 딸이라도 없는 듯이 보이잖아요. 또 딸자식이 부모님 오래 살라고 하니 좋은 게 좋은 것이지 하는 마음으로 해 준 것인데』하는 신자들의 변명을 들어야 했을 때는, 십계관을 받아들고 산을 내려오다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서는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십계관을 부셔 버렸던 모세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고 빤히 보이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이라도 하는 아픔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제 쌍용 가락지가 세일이 되어 팔린다고 해서 지난 우리의 잘못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의 잘못이 십계관이 부서지고 수천명이 죽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텐데, 우리라고 어찌 하느님의 징벌을 피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가졌던 얄팍한 속셈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의 부재(不在)를 내몰라라 했던 죄스러움에는 더 큰 징벌과 고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우리는 어떠한 하느님을 찾고 있으면 그 하느님께 무엇을 희망하고 있단 말인가?
오늘도 우리의 하느님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데 이러한 자세로 세계성체대회를 운운하며 자위하고 만족해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징벌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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