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첫머리에서 복음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구약시대부터 약속하신 바이며 그것은 다름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이라고 했다(로마 1장2~3). 사도교회 초창기에 사도들의 일거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첫 제목으로 삼았다. 마르코복음사가는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책이름을「복음」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첫 머리에 내세웠다. 그「복음」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로 부터 시작하며 그 일은 바로「복음」이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아들이며 복음 그 자체이며 이 복음을 가져다준 분이시다.
이러한 내용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라는 것이다.
이「복음」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만큼 무게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후에『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모든 것을」버리는 사람은…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마르10장29~30). 이「복음」은『때가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 왔다』(마르1장15)는 예수그리스도의 제1성으로 시작되지만「가라온 하느님 나라」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내림을 가리킨다는 것을 선구자 요한은 증언한다. 하느님의 구원의 복음과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림을 마르코는 구약 예언의 성취에서 깨우쳐주고 있다. 이사야 예언서를 보면『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라고 하였고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말라키서는 이 소식을 전할 특사파견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길을 닦으리라』(말라3장1). 마르코는 이 두 예언을 이사야의 이름으로 묶어서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하고 증언할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는 말로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일깨워 준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와 세례와 죄의 용서를 부르짖었다. 이것은 구약사상에서는 주님의 날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징표이다. 주님의 날은 종말의 날이며 심판의 날이다. 요한은 그 주님의 날이 메시아를 통하여 왔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구약시대의 모든 시름이 끝나는 날을 알리는 것이었고 모든 헛된 기대가 끝나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주님의 날이 오면 기쁨(복음)의 날이 시작된다. 이 날이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에 나타나는 날이다. 그래서『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고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것이다. 원님 행차에 대곤을 집고 앞장서던 전배군노마냥 메시아오심을 알리던 요한은 까실까실한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 먹을 것으로는 메뚜기와 산청, 이런 생활을 하였다. 이 근엄하고 인고의생활은 옛날 구약시대에 하느님의 사람이며 죽지 않고 하늘에 올랐다가 때가 되면 다시 온다고 믿고 있던 엘리야의 모습이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최초의 수로복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후에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있는 엘리야라고 단언하셨다. 사람들은 요한을 보고 엘리야가 아니냐, 당신이 바로 메시아가 아니냐고 묻기까지 하였다. 요한은 자기는 엘리아도 아니고 메시야도 아니고 내 뒤에 나타나실 분을 세상에 알릴 사명을 띤 사람일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분은「더 훌륭한 분」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분은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주인이라면 자기는 그 노예가 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명백히 해 주었다. 그분이 오실 길을 안내하면서 지금까지는 앞장섰지만 그분이 오신 후에는 뒤따라 다니며 신발을 들고 다녀야 하며 신끈을 묶어드리는 시중을 들어야 하겠지만 그럴 자격조차 자기는 없는 미미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과 그 위대하신분과의 차이점을 재는 척도는 하느님이 맡기신 사명의 차이에서 온다.
요한은 회개의 표로 사람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사명을 받았고 예수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사명을 지녔다는 것이다. 물과 성령 이것은 앞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모든 사람들의 영혼 안에 알알이 새겨질 인호이며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성령의 세례, 이것은 사람들을 깨우쳐주고 인도하며 하느님의 모습으로 세련되게 정련시키는 세례이며, 불의 세례, 이것은 밀을 받아주고 믿음을 증거하는 힘을 준다. 초대교회부터 믿음을 위하여 순교하는 것을 불의 세례라고 했다. 결국 불의 세례는 모든 사악한 것을 살라버리는 최후의 결판을 말할 수도 있다. 최후의 결판은 사랑으로 끝난다. 성령의 세례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준다. 이 빛을 증언하기위하여 하느님의 파견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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