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일간의 일정으로 태국국경 난민 제2지역(SiteⅡ)과 KAO-I-DANG 캠프를 방문하기 위해 방곡을 출발했다. 동쪽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차분한 마음으로 다가올 나의 삶, 아니 진정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삶에 있어 그렇게 힘든 생활을 맞이해보지 못했는데 과연 가난과 한계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를.
창밖으로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넓은 벌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국은 남한의 약5배되는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인구는 6천만명이다. 방곡을 벗어나면 마을은 가끔 밖에 볼 수 없고 나머지는 버려진 땅으로 방치되어있다.
약4시간의 기차여행 후에 보통 아란(Aran)이라고 부르는 아라니아프라텟(Aranyaprathet)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 도시에는 외국의 모든 대행업무 본부가 있어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고 COERR 사무실도 이 도시에 있다. 함께 여행한 분들과 나는 베드로 신부 집에 도착하여 많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베드로신부는 7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난민들을 위해 9년여 동안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예수회원으로 크메르난민촌이 국경지역 안에 있을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첫 예수회원이다. 우리 여행의 안내자인 알퐁소 신부는 스페인으로 태국예수회에서 20년간 활동했다.
여행과 많은 사람의 만남으로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들면서 새롭게 맞이하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든 것이 생소한 것이라 사람들과 환경, 언어들이 내 앞에 갑자기 우뚝 서서 나를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모든 것들을 여과시키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맞이하는 현실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그 현실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가 결정되는 것처럼 나 자신도 이와 같은 자리에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 중 그래 아무런 색안경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자, 나의 가치관으로 먼저 판단하지 말자, 나중에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자고 마음을 다지면서 잠을 청했다.
국경지역이라 군부대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어 취침나팔소리가 들렸다. 나팔소리를 들으면서 불현듯 내가 보냈던 군대생활이 생각나면서 향수에 젖게 되었다. 포근한 향수감을 느끼면서 그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당신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라 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을 당신은 아셨기에 이것을 요청하셨음이 당신의 뜻이라면 간직하리다.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음을 당신께 감사드리며 다가올 현실들을 당신께 맡기고자하는 이 마음 받아주소서.
잃어버린 한마디의 양을 찾기 위해 당신이 벌판을 헤매고 다녔듯이 저 자신도 그런 마음 깊이 간직하도록 힘을 주소서.
아침6시에 기상하여 세면 후 미사를 드린 다음,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75㎞떨어진 제2난민지역(siteⅡ)으로 향하기 위해 자동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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